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E L 제임스(소설)《심연 1 DARKER》

by 답설재 2019. 8. 24.

E L 제임스 《심연 1 DARKER》

Fifty Shades Darker as told by Christian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황소연 옮김, 시공사 2018

 

 

 

 

 

 

1

 

젊은 사업가 크리스천 그레이와 대학 졸업생 아나스타샤 스틸과의 5일간에 걸친 로맨스가 펼쳐집니다.

 

"그렇지만 난 이기적인 남자야. 네가 사무실에 온 이후 줄곧 너를 원했어. 넌 정말 아름답고, 정직하고, 따뜻하고, 강인하고, 재치 있고, 묘하게 순수해. 늘어놓자면 끝도 없지. 넌 경이로워. 난 널 원해. 다른 사람이 너를 가진다는 생각만 해도 칼이 내 어두운 영혼을 휘젓는 것 같아."(58)

 

크리스찬 그레이는 그레이 엔터프라이즈 홀딩스의 CEO, 어느 정도인가 하면 시간당 수입이 10만 달러이고, 멋진 비행기와 배가 항시 대기 상태이고, 경호원이 서너 명, "아름답고 정직하고 따뜻하고 강인하고 재치 있고 묘하게 순수하고 경이로운" 아나스타샤 스틸도 그가 고용한 '서버미시브'이고, 그녀 아나스타샤 스틸이 편집인 잭 하이드의 비서로 취업한 걸 알고는 당장 그 출판사를 사버리고…….

그렇게 해놓고 아나스타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는 자신을 "그레이 엔터프라이즈 홀딩스 Inc의 CEO 겸 당신 상사의 상사의 상사"라고 쓰기도 하는데 스스로 조심하기도 하고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정열과 야욕, 금력 같은 것으로 아나스타샤 스틸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끊임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드러냅니다. 돈이 아주 아주 많으니까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2

 

여기까지 얘기하고 '19금 영화' '엄마 포르노' 어떻고 하고 말면 잘해봤자 '에로틱 로맨스 소설'일텐데 그러면 잘못된 관점의 소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세상이 아무리 그렇더라도 작가로서의, 심지어 이 나이에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책무성 같은 것도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크리스천, 당신은 내가 서브가 되어주길 바라잖아요. 거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서브미시브라는 말의 정의에, 한번 내게 그런 이메일을 보낸 적도 있었어요." 그녀는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동의어로 이런 말들이 있지 않았나요. 옮겨보면, '유순한, 순응하는, 복종하는, 승순하는, 수동적인, 체념한, 인내심 있는, 온순한, 길들여진, 정복된'이었죠. 난 당신을 쳐다봐서도 안 되고요. 허락받기 전엔 당신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 돼요. 그런데 뭘 바라죠?"(37)

 

연이은 성애 장면을 섬세하고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마음놓고 선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한 '장치'인지는 모르지만, 그 젊고 멋진 사업가는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입양되기 전에 갖은 학대와 성폭력을 겪은 소년이어서 그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서버미시브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걸 허락하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괴물'이라고 자학하는 등 아주 피폐한 성격을 지녔는데, 적나라하게 묘사된 성애 장면 속에 스며있는 우리의 매혹적인 여성 아나스타샤의 헌신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의 힘으로 그는 그 핸디캡을 잘 치유해가는 중입니다.

그의 주치의(정신과)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폴린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크리스천, 내 생각엔 말이죠. 사실 진작에 든 생각인데, 당신은 한 번도 사춘기를 겪은 적이 없어요. 정서적 측면에서 말이죠. 그러다 이제야 사춘기를 치르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눈에 띄게 혼란스러워하고 있어요." 그가 계속했다. "항불안제는 거부하시니, 일전에 이야기한 '이완 기법'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아, 그런 개짓거리는 싫은데, 나는 눈을 흘겼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지금 토라진 10대 청소년처럼 행동하고 있었다.(412)

 

 

3

 

재미를 더해주기 위해 그들의 사랑을 해코지하려드는 여성들도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잘 피해가고 있습니다. 423쪽 아래에 "《심연》 2권으로 이어집니다."라고 되어 있으니까 우여곡절이 이어지겠지요.

 

 

4

 

전자책을 읽는 기구(아마존 킨들)를 개발한 제이슨 머코스키의 책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책이 소개된 걸 보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영화 「50가지 그림자-심연 Fifty Shades Darker」를 소개하는 동영상(3편)이 있긴 하지만 '비공개'였습니다. 백과사전에는 '엄마 포르노'(노골적인 성애 묘사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영국 작가 E. L. 제임스가 쓴 3부작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를 이르는 말)라고 소개되고 있고, 위키백과에는 "본디지/디서플린, 지배/피지배, 가학증/피가학증을 포함한 노골적으로 에로틱한 장면으로도 유명"하다는 내용도 보였습니다.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