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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by 답설재 2019. 9. 13.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DRIVING WITH PLATO

남경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4

 

 

 

 

 

 

 

 

 

1

 

태어남, 걸음마와 옹알이, 학교, 자전거, 시험, 첫 키스, 순결의 상실, 운전면허, 첫 투표, 취직, 사랑, 결혼, 출산, 이사, 중년의 위기, 이혼, 은퇴, 늙어감, 죽음, 내세.

 

'삶의 이정표'가 스무 가지로 제시되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고, 피할 수 없는 관문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도 있었고 더 혹독한 이정표도 있었습니다. 밝히기가 난처하거나 부끄러운 것도 있고 자랑스러운 것, 잊지 못할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 줄이나 알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스무 가지로도 이야기는 충분합니다.

 

 

2

 

'태어남' '걸음마와 옹알이' '학교' '자전거' '시험' '첫 키스' '순결의 상실' '운전면허' '첫 투표',

여기까지는 그런가보다 하거나 때로는 향수에 젖어서, 때로는 눈물겹게, 잠시 즐겁거나 쓸쓸한 마음으로, 대체로는 대수롭지 않게, 더러 후회도 하며 읽었고

'사랑' '결혼' '출산' '이사' '중년의 위기' '이혼' '은퇴' 같은 주제는 심각했습니다.

 

두어 가지는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더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남아 있는 주제가 너무 적습니다. '늙어감' '죽음' '내세' 단 세 가지뿐인데 대한 아연함을 느낍니다.

 

'내게 남은 건 결국 겨우 세 가지란 말이지?'

더구나 '내세'는 영향을 받긴 하지만 이승에서의 일이 아니어서 남은 건 '늙어감' '죽음' 두 가지. 자꾸 늙어가고 그러다가 죽으면 끝입니다…….

 

 

3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걸면 곧바로 타임머신이 된다고 상상해보자. 하지만 이 타임머신은 H. G. 웰스가 상상한 것처럼 역사의 앞뒤로 가는 대신 우리의 생애로 들어간다. (…)

동행도 있다. 우리의 조수석에는 철학자 플라톤이 수염을 바람에 날리며 앉아 있다. 그는 그냥 동승자가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고 인간으로서 겪는 그 경험이 어떻게 신과 연결되는지 설명해줄 것이다. 뒷좌석에도 창가에 작가, 사상가, 화가 등 많은 스승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6~7)

 

책머리의 이 안내는 '태어남'에서 '이사' '중년의 위기' 같은 것들까지 읽을 때에는 시큰둥할 정도였는데('아는 척하기는…….') '은퇴' '늙어감' '죽음'에 이르러 비로소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4

 

존 란체스터(John Lanchster)의 소설 《필립스 씨(Mr. Philips)》를 예로 들어보자. 중년의 '주인공'은 그를 정의하던 회계원의 일자리를 잃었다. (…) 신문 판매대를 살펴보던 그의 눈길은 꼭대기 선반의 잡지들로 향한다. 그런데 잡지에 실린 외설스런 사진들에 흥미를 느끼기는커녕 포르노 산업의 경제적 기반에 관해 계산하기 시작한다.(261)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264) 은퇴의 비결은 은퇴하지 않는 데 있지 않을까? 일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지만 그 대신 새롭고 흥미로운 상황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것은 죽는 날을 넘어서까지 살게 해 줄 수 있다. (…) "특히 이 나이가 되면 이미 배운 것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더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265, '은퇴')

 

"인생은 그런대로 괜찮은 연극이지만 3막은 나쁘다." 소설가 트루먼 커포터 (274)

노년은 무조건 무대에서 퇴장해 신의 대기실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노화는 점점 빛이 어두워지다가 이윽고 주변의 어둠과 섬세하게 합쳐지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마치 이륙하는 비행기의 깜빡이는 신호등이 밤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그 과정은 돌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이행이 될 수 있다.(275)

치아가 누레지고 등뼈가 굽어도 스스로를 신선하게(역시 은유적인 의미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절망과 체념에 사로잡힌다면 사정은 조금씩이라도 계속 악화될 따름이다. 그보다는 그런 상태 변화를 용인하거나 더 나아가 찬미하는 편이 낫다. 가차 없는 불가역 반응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점진적인, 더 나아가 놀라운 재구성의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다.(283, '늙어감')

 

우리가 슬퍼하는 이유는 죽은 사람의 프렌치호른을 연주하는 솜씨, 하버드 졸업장, 도쿄 올림픽 우승 기록 때문이 아니다.(295)

우리 후손이 우리를 영원히 잊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완전히 죽는 것이다. 이런 죽음이 예컨대 사후 한 세기 뒤에야 닥친다면 우리에게는 한평생을 넘는 충분한 가용 시간이 있는 셈이다.(299, '죽음')

 

내세의 중요한 기능은 죽은 뒤의 사정과는 별로 관계가 없고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더 관계가 깊다. 그래서 '내세'는 사실상 양심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307, '내세')

 

이것은 좀 서글픈 메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