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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가브리엘 루아 《내 생애의 아이들》

by 답설재 2019. 10. 5.

가브리엘 루아 《내 생애의 아이들》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3

 

 

 

 

 

1

 

 

16년 전에 읽었는데도 한시도 잊은 적 없는 책입니다. 교육부에 있다가 교장이 되어 나간 학교의 여성 행정실장의 닉네임이 "내 생애의 아이들"인 걸 보고 반가워서 덥석 껴안을 뻔했을 정도였습니다.

 

『내 생애의 아이들』, 서정적인 이 이야기는 나의 누추했던 교사 시절까지 서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가브리엘 루아' 혹은 '내 생애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떠오르면 곧 처음 발령을 받아 근무한 그 시골 학교가 떠오르고 이 소설의 한 장면을 상기하게 됩니다.

 

흔히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를 다 마치곤 해서, 칠판은 본보기들과 그날 풀어야 할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상에 가 앉아서 우리 학생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느라 마음이 급했다. 나는 한 줄기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광대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히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우리의 어긋나 버린 희망과 영원한 새 시작의 짐을 지워놓는 곳은 바로 저 연약한 어깨 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감하는 것이었다.(121~122)

 

 

2

 

『싸구려 행복』(소설)의 작가 가브리엘 루아는 한때 마니토바주(캐나다)의 고향 가까운 곳에서 홀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어렵고 고독하게 지내기도 했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했겠지요. 이 소설은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18세의 여 교사와 초등학교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련하게 사라져 가는 내 교사 시절이 그리웠고 그런 날들로 되돌아간 것 같을 땐 행복했습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에게는 미안해서 지금이라도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고, 이젠 그들을 만날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미안한 마음만큼 언제까지나 잘 지내기를 기원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 자신 그런 시절의 상처를 이제 간신히 치유한 상태였고 겨우 청소년기의 몽상에서 벗어나 아직 성년의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이른 아침 교실에 서서 내 어린 학생들이 세상의 새벽인 양 신선한 들판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학교라는 함정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로 달려가서 영원히 그들의 편이 되어야 옳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180)

 

나는 그림처럼 떠오르는 이 장면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이 장면만으로도 이 책을 좋아합니다.

 

 

3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에서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려고 여러 가지 과목을 가르칩니다. 그 다양한 과목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빼버리고 이 소설을 읽도록 해서 학점을 주면 좋을 것입니다.

학생들도 교수들도 팍팍한 생활을 하기보다는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을 마련해서 서로 그만큼이라도 여유로워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쨌든 교사가 되려는 사람은 이 소설을 꼭 읽기를 기대합니다. 정작 교사가 되면 정말로 분주해서 책을 읽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