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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천운영(단편소설) 「아버지가 되어주오」(단편소설) 천운영(단편소설) 「아버지가 되어주오」 『현대문학』 2020년 8월호(84~104) 읽기에 아주 불편한 소설이 있다. 단편소설 중에 자주 눈에 띈다.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편하게 읽히는데도 나타내고 싶은 얘기는 다 하는구나.' 싶었다. 술심부름은 나한테만 맡기셨어. 명자가 받아오는 술이 제일이라 하셨지.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니 뭐니 하겠지만, 난 그 일이 참 좋았어. 술도가에 가면 다들 알아봤지. 서학교 남 선생 딸내미로구나 하고. 병은 딱 반만 채워. 당신 하루 자실 만큼만. 그땐 주전자도 아니고 됫병, 유리 됫병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무거워. 그러니 옆구리에 끼었다가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가 바닥에 내려놨다 하면서 가지. 그렇게 가다 서다 하다 보면 저만치 아버지가 기다리고 서 있는 거야.. 2020. 8. 29.
김 솔 「나는 아직 인간이 아니다」 김 솔 「나는 아직 인간이 아니다」(단편소설) 《현대문학》 2020년 6월호(34~63) 설령 죽음에 처참히 굴복당하더라도 나는 결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스스로 포기하진 않겠다. 포기하는 순간, 또 다른 인간이 이곳으로 끌려와 죽게 될 것이고 분명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죽어가는 인간의 숫자보다 이곳에다 인간을 가두고 감시하는 인간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죽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신의 없는 존재인지 모든 인간에게 다시 알려지는 순간, 이전보다 더욱 잔인한 전쟁과 학살이 세계 곳곳에서 시작될 것이고, 나중엔 얼마나 많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 인간에 의해 살해당했는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며, 자.. 2020. 8. 21.
프란츠 카프카 「사이렌의 침묵」 2013년 5월 14일에 올렸던 자료입니다. 블로그 시스템이 바뀌고나니까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눈에 띄는 대로 글씨체를 바꾸곤 했는데 본래의 날짜에 올린 것으로 저장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오늘 날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료를 보러 오는 분은 끊임없지만, 댓글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으므로 댓글란을 없앴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오디세우스는 칼립소(트로이에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를 7년간 오지지아 섬에 잡아 두었던 바다의 정령 : 번역자 민희식의 주)의 분부대로.. 2020. 8. 11.
존 브록만 엮음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 천재 과학자 27명의 호기심 많은 어린 시절 존 브록만 엮음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 나는 타고난 이론 물리학자였다. 구태의연하게 들리겠지만 소명이란 것은 존재한다. 내게는 그것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갖고 있다.(91) 폴 데이비스(시드니 매콰리대학교 부속 오스트레일리아 우주생물학센터 자연철학 교수)는 '우주론이 나를 부른다'는 글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식구들은 나를 괴짜라고 생각했다. 데이비스 가문 어느 구석을 살펴보아도 과학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처음 강사 자리를 얻은 직후에 친척의 결혼식장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숙모가 내게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도대체 언제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거니?" 내 할머니도 .. 2020. 8. 3.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김정하˙유제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p data-ke-size="size18".. 2020. 7. 19.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2》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2》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0 케말은 영화인 페리둔의 아내가 되어버린 유부녀 퓌순을 그리워하고 다가가고 싶은 욕망을 일일이 설명한다. 두려움, 초조함, 고통, 번민, 고뇌, 환희, 상심, 분노, 반성, 후회, 다짐, 상심, 슬픔, 희망, 기대…… 사랑에 빠져서 헤어날 길 없는 마음의 변화를 낱낱이 보여준다. 무려 8년간! 일주일에 네 번 저녁 식사 시간을 함께하고 통금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그 집을 나선다. 정확히 칠 년하고도 열 달간, 퓌순을 만나러 저녁 식사 시간에 추쿠르주마로 갔다. 처음 간 것은 네시베 고모가 “저녁때 와요!”라고 말한 지 십일일 후인 1976년 10월 23일 토요일이고, 퓌순과 나와 네시베 고모가 추쿠르주마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것이 1984년 .. 2020. 7. 8.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1》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1》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0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 행복을 지킬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평온으로 내 온몸을 감쌌던 그 멋진 황금의 순간은 어쩌면 몇 초 정도 지속되었지만, 그 행복이 몇 시간처럼, 몇 년처럼 느껴졌다. 1975년 5월 26일 월요일, 3시 15분경의 한 순간은, 범죄나 죄악, 형벌, 후회에서 해방되는 것처럼, 세상이 중력과 시간의 규칙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더위와 사랑의 행위로 땀에 흠뻑 젖은 퓌순의 어깨에 입을 맞추고,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천천히 그.. 2020. 7. 7.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Ⅲ 여기와 다른 곳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8 춘천이나 강릉에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전주나 여수도 좋고 통영, 진주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유는, 막연합니다. 춘천, 강릉, 전주, 여수, 통영, 진주....... 우선 지명부터 좋은 곳들이지만 그런 곳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이미지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아서 단 한 가지도 “이것!”이라고 내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에 빈번히 등장하는 주제는 이스탄불이 아닌 곳, 유럽 혹은 서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무언가 ‘부족한 삶’일 것이라고 예감했었고, 이 예감의 일부분은 자신은 이스탄불, 그리고 터키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중심부 바깥, 변방에서 산다는 생각, 느낌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학에서의 근본적인 명제도 자신이 “중심부에.. 2020. 6. 23.
《다른 색들》Ⅱ 나는 왜 읽는가?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8 어떤 결핍감, 어떤 불충분함.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용기를 내어 여행을 떠난다. 이것은 휘스레브와 쉬린이 사랑을 위해 떠난 여행과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를 완성시킬 '타자'를 찾는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더 배후에 있는, 더 중심부에 있는 것을 향한 여행. 아주 먼 곳에 어떤 실제가 있다. 누군가가 이를 우리에게 말했고,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으며, 그것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문학이란 이 여행 이야기다. 나는 이 여행을 믿는다. 하지만 어디 먼 곳에 중심부가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것을 불행이라고도, 낙관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다. (......) '쉬린의 어리둥절함'이란 에세이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쉬린은 천하일색의 아르메니아 공주.. 2020. 6. 18.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Ⅱ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로리타》신동란 옮김, 모음사 1987(13판)       롤리타.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다는 느낌?‘불경’은 아니지? 외설스럽다?외설? 아니지! 외설하고는 다르지!그럼? 소녀(여성?)의 이름은 국어사전에도 들어 있다."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나보코프(Nabokov, V.)가 195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파격적인 소아 성애를 묘사하여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으며, 한때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 발간되었을 때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오늘날 소아 성애를 가리키는 롤리타 콤플렉스가 일반 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나는 이 책을 '버젓이'(?) 들고 다니며 읽진 않았다. "(…) 아아 이름이 아주 예쁘구나 / 계속 부르고 싶어 / 말하지 못하는 / 나쁜 상.. 2020. 6. 14.
오르한 파묵(에세이) 《다른 색들》Ⅰ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8 일요일 아침에 출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겠지. 자전거 위에서 둑 아래로 흐르는 가을 시냇물을 내려다보며 내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서정시인 생각을 했고 무슨 다짐도 했었다. 오십 년..... 충분한 세월이 흘렀다.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열차는 당연한 것처럼 지금도 다니겠지? 그만 타겠다고 얘기하진 않았다. 그 말을 했어야 할까? 고속도로는 막히겠지? 그것도 확인해야 할까? 나는 무관심했다. 다가온 일들은 지나가면서 계약이나 했던 것처럼 세월도 데리고 갔다. 너무 멀리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잊어버렸다. 다짐, 길, 사람들, 일들…… 정리되지 않은 것들뿐이다. 멀리 와서 오래되어서 생각만으로도 지친다.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가 더 그렇게 .. 2020. 6. 7.
스티브 로페즈 《솔로이스트》 스티브 로페즈 《솔로이스트 The soloist》 박산호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신문기자 스티브 로페즈가 혼잡한 거리 모퉁이의 베토벤 조각상 옆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끄집어낸 듯한 낡은 바이올린으로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는 흑인을 보았습니다. "소리가 근사한데요." "아, 고맙습니다." "농담 아니죠?" "난 음악가는 아니지만, 그래요, 정말 근사했어요." 그의 전 재산을 산더미처럼 실은 쇼핑카트 옆에서 그 흑인은 때가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에게선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나다니엘 안소니 아이어스, 50세쯤의 그 흑인은 정신분열증 환자였고, 스키드 로 근처에서 가장 큰 빈민 구제 시설인 미드나이트 미션에 있다고 했지만 잠은 거리에서 자는 노숙자였습니다. 더구나 줄이 두 개밖에 없는 바이올린.. 2020.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