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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존 브록만 엮음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

by 답설재 2020. 8. 3.

천재 과학자 27명의 호기심 많은 어린 시절

존 브록만 엮음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

 

 

 

 

 

 

 

 

나는 타고난 이론 물리학자였다. 구태의연하게 들리겠지만 소명이란 것은 존재한다. 내게는 그것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갖고 있다.(91)

 

폴 데이비스(시드니 매콰리대학교 부속 오스트레일리아 우주생물학센터 자연철학 교수)는 '우주론이 나를 부른다'는 글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식구들은 나를 괴짜라고 생각했다. 데이비스 가문 어느 구석을 살펴보아도 과학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처음 강사 자리를 얻은 직후에 친척의 결혼식장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숙모가 내게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도대체 언제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거니?" 내 할머니도 정말 궁금하다면서 물었다. "물리학이라는 게 정확히 뭐하는 거냐?" 더 현실적인 사람이었던 아버지는 머릿속에서 우주의 수수께끼를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보내는 삶 자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단언했다. "그렇게 앉아서 궁리만 하는 네게 봉급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어머니는 만일 내가 암 치료 연구를 한다고 했으면 과학자가 되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보기에 물리학은 수수께끼 같으면서 어딘가 사악한 듯했다.(91~92)

 

그런가 하면 다섯 살 때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은 집안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외할머니는 유럽에서 최초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들 중 한 명이었다. 외할머니는 유럽에서 강의를 하면서 19세기에 증조할머니가 젊은 여성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학교(슈테른 쉴러)도 운영했다. 외할아버지는 의사였는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동료이기도 했다.(프로이트의 손자인 발터는 내 어머니에게 청혼을 한 적이 있다.) 이모는 심리학자인데 최근에는 홀로코스트로 근거를 잃은 유대인들을 다룬 책들을 쓰고 있다. 친할아버지는 기술자였고 숙부는 유럽의 공장들을 자동화하는 정교한 기계들을 만든 재능 있는 발명가였다. 외숙부인 조지 파커는 뛰어난 전기 공학자로서 벨 연구소에 다녔다. 또 다른 외숙부인 프랭크는 대단히 명석한 사람으로서 뉴욕에서 변호사로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집안 모임에서 어린이가 영리하다는 소리를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안에서는 어떤 새로운 개념이 화제에 오르면 격렬하고 활기찬 토론이 이어지곤 했고,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지식인들이 입에 오르내렸다. 내가 이목을 끌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착상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 쉽지 않았으므로 그 착상을 물질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편이 도움이 되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배우고 성취하는 것을 존중했기 때문에 지식을 그렇게 구현하면 주목을 받았다.(254~255)

 

또 다른 유형으로 과학자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대니얼 데닛(터프츠 대학교 인지과학센터 소장 겸 철학교수)은 종횡무진이라는 말이 적절할 듯한 이력을 자랑했습니다. 화려한 외교관이었던 아버지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고등학교 사회 교재 편집을 맡은 어머니가 살림을 꾸려가는 집 안에서 ‘설계하고 만들고 뜯어고치는’ 일에 열중하다가, 우수에 젖은 미셸 파이퍼 같은 여성을 끼고 몽롱한 발라드를 연주하는 한량을 꿈꾸었고, 위대한 화가가 되겠다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헨리 무어나 콘스탄틴 프란쿠시 같은 조각가를 영웅으로 삼기도 했고, 철학자가 되려고 애쓰게 되자 조각은 그냥 취미활동이 되었으며, 교육자가 자신에게 맞는 직업임을 깨달았지만 또 그다음엔 쓰고 쓰고 또 쓰는 법을 배우면서 자신이 소설가가 되려는 모양이라고 여겼고, 생물학에 열중하다가 싫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는 ‘내가 자라서 되고 싶은 것’이라는, 농담 같은 제목의 글을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나는 아이였을 때 과학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아이처럼 느꼈을 때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나는 더 자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345)

 

그렇지만 대니얼 데닛의 글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석연치 않다고 할 것 같았습니다. 하워드 가드너(하버드 대학교 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를 만나본 뒤에는 장 피아제의 패기 넘치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곧 인지발달심리학으로 방향을 돌렸다고 한 학자입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결국 연구자이자 사회과학 분야들의 종합자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경험들 속에서 내가 그런 직업을 갖게 된 단서를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중 네 가지를 곱을 수 있다.

첫째, 나는 언제나 넓은 분야에 걸쳐 비교적 자유분방한 호기심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 내 관심은 인간 이외의 자연 세계나 물리학적 세계보다는 인간과 사회에 더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212)

셋째, 나는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긴 했어도 언제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나는 인간을 묘사하거나(소설가처럼) 인간을 돕기(의사나 교사처럼)보다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213)

마지막으로, 나는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대개 정의하고 범주를 만들고 분류하는 일부터 시작한다.(214)

 

스물여덟 명의 과학자가 각기 다른 얘기를 한 책입니다. 이 책을 만든 존 브록만은 과학자가 되는 길은 대중이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하기야 과학자뿐만 아니라 뭐가 되든 대중이 없는 일들 투성이입니다.

그처럼 대중이 없어야 하는 일을 대중이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의 틀을 만들어 과학자를 양성해내고 싶은 것이 지도자들의 생각이 아닐까요? 가만히 있어야 하는 지도자는 생각하기도 어려우니까요.

우리 교육자들 혹은 과학교육자들 중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특히 많은 것 같았습니다.

여기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들처럼 처음부터 똑똑한 아이들은 저절로 과학자가 될 테니까 그냥 두고, 어정쩡한 아이들을 과학자로 만들려면 아이들을 뛰어난 사람들이 만든 틀 안에 집어넣어야 하는 것일까요?

나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