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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스티브 로페즈 《솔로이스트》

by 답설재 2020. 5. 31.

스티브 로페즈 솔로이스트 The soloist

박산호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신문기자 스티브 로페즈가 혼잡한 거리 모퉁이의 베토벤 조각상 옆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끄집어낸 듯한 낡은 바이올린으로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는 흑인을 보았습니다.

 

"소리가 근사한데요."

  "아, 고맙습니다." "농담 아니죠?"

  "난 음악가는 아니지만, 그래요, 정말 근사했어요."

  그의 전 재산을 산더미처럼 실은 쇼핑카트 옆에서 그 흑인은 때가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에게선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나다니엘 안소니 아이어스, 50세쯤의 그 흑인은 정신분열증 환자였고, 스키드 로 근처에서 가장 큰 빈민 구제 시설인 미드나이트 미션에 있다고 했지만 잠은 거리에서 자는 노숙자였습니다.

  더구나 줄이 두 개밖에 없는 바이올린으로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하는 그는 알고보니 30년 전 줄리어드 중퇴자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로부터 두 사람이 소설처럼 전개해가는 실화였습니다.

  나다니엘은 당연히 제정신일 때도 있지만 돌연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스티브 로페즈는 정신병을 앓으면서도 음악의 천재성을 잃지 않고 있는 나다니엘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프로 음악가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노력은 마음처럼 쉽지 않고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로부터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그러한 관계가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요?

  나다니엘의 음악성을 나타낸 장면, 그의 정신병을 고쳐주려는 스티브 로페즈의 열정을 나타낸 장면들은 소설 같았습니다.

 

 

  내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그가 말했다.

  "이걸 들어봐요. 이걸 들으니까 옛 생각이 나요."

  그 음악은 처음에는 마구 두들기듯이 희망찬 기운을 전하며 시작했다.

  "이게 뭐죠?"

  "시벨리우스 2번 교향곡이에요."

  "이 곡을 잘 알아요?"

  "그럼요, 내가 사랑하는 곡이에요. 줄리어드 오케스트라 연습 시간에 거듭해서 연주했던 곡이거든요."

  (…)

  "들려요? 붐붐붐. 내가 이 곡을 얼마나 많이 연주했는지 알아요?"

  백 년도 훨씬 전에 핀란드 작곡가가 작곡한 작품인 2번 교향곡이 아이어스 씨를 휩쓸어서 그의 청춘 시절로 다시 데리고 갔다. 음악은 치솟았다가 굴러떨어지고, 속삭였다가 노호했다. 우리는 달빛에 비친 그림자에 덮여 있었고, 주위 몇 블록에 걸쳐 사람들은 보도 위에 잠들어 있었는데 시벨리우스는 고통스런 꿈속에서 웅얼거리는 잠꼬대 위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여기서 시벨리우스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아이어스 씨가 물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난 이 곡을 사랑해.' 들려요? 난 이 곡을 사랑해. 이 곡이 좋아."

  그는 40분간에 걸쳐 연주된 교향곡 전체를 해설하면서 4악장이 시작되자 상상 속 콘트라베이스의 운지법을 보여주었다. 잊을 수 없이 사람의 마음속으로 슬금슬금 들어오는 스릴 넘치는 리듬의 행진이었다가 다시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마지막에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연주하고 싶어요."

  (…)

  아이어스 씨에게는 아쉽게도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승리에 차 극적인 결말로 넘어가고 있었다.

  "콘서트가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