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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그림 〈별이 빛나는 밤〉 그림 〈별이 빛나는 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신성림 옮기고 엮음, 예담, 2011, 190)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압도될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함 앞에서 아무리 큰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우선 시작은 해야겠지.(182-183)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는 없는 것일까? .. 2020. 5. 29.
최진영 《내가 되는 꿈》나는 어떤 부모, 어떤 교사일까? 나는 어떤 부모, 어떤 교사일까? 최진영 《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2020년 5월호 90~158. 1 요즘 소설(단편)들은 의욕이 넘친다. 그렇지만 시작 부분에서 호기심을 갖게 해 놓고는 오리무중 혹은 지지부진에 빠진다. 오르한 파묵은 이렇게 썼다(「다른 색들」). "내가 믿을 수 있는 촘촘하고 밀도 있고 심오한 소설은 무엇보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삶에 매이게 한다." 오르한 파묵이 촘촘하고 밀도 있고 심오한 소설이라고 한 것은 어떤 소설일까? 그게 철학을 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소설'이니까 재미있으면 좋겠다. 재미있게 해주지도 못하면서 왜 철학까지 하려고 드는지 모르겠다. 누가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인지, 누가 그런 걸 좋다고 했는지…. 나는 노인이어서 책을 읽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 2020. 5. 22.
피천득 외 《한국의 명수필》 피천득 외 지음 《한국의 명수필》 손광성 엮음, 을유문화사 2013 그믐달 ――― 나도향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 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 2020. 5. 20.
미야베 미유키 《퍼펙트 블루》 미야베 미유키 《퍼펙트 블루》 김해용 옮김, 노블마인 2017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 푸르렀던 날들에는 복잡하기만 했던 것이 아주 간단하게 변해버렸습니다. '이런 것이었다면...' 유망한 고교 야구선수가 그를 시기한 것으로 알려진 친구와 거의 동시에 불에 타 죽었는데, 불법 약물 실험을 한 회사와 그 회사의 비리를 이용해서 일확천금을 노린 불량배의 소행인 줄 알았더니 그 야구선수의 부모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사회와 부모의 '공모'라고나 할까요? 사건들은 단순하지 않을 수밖에 없겠지요. "나와 네 엄마는 숨길 게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증명하면 가쓰히코가 잃는 게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가쓰히코가 생각하는 것만큼 순진하지도 정직하지도, 만만하.. 2020. 5. 15.
트레이시 슈발리에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진주 귀고리 소녀》양선아 옮김, 강 2004        1 2004년에 읽고 엄청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정신을 차려서 '썩' 좋은 독후감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게 16년,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습니다. 이번에도 '정신을 차려서' 썩 좋은 독후감을 쓰려고 하면 나는 이 소설을 다시 한 번 읽거나 이곳저곳 자세히 살펴봐야 할 테니까 결국 독후감 숙제를 또 미루기 쉽고, 그러면 세월은 또 유수와 같이 16년쯤 흐른다면 2036년 경에 다시 마음을 먹게 될 것 같아서 오늘 그냥 생각나는 대로 메모라도 해놓고 말기로 했습니다. 썩 좋은 독후감 쓰기는 내겐 불가능한 일이고 괜히 세월만 가니까 아예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2 표지의 소녀는 베르메르라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가 그렸는데.. 2020. 5. 4.
아멜리 노통브 《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배고픔의 자서전》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06 「바누아투에는 먹을 게 사방에 널려 있어요. 힘들여 생산할 필요가 전혀 없지요. 두 손을 뻗으면 한 손에는 야자열매가, 다른 손에는 바나나 송이가 쥐어집니다. 몸을 식히려고 바닷물에 들어가 봐요. 그러면 원하거나 말거나 맛이 기가 막힌 조개, 성게, 게, 그리고 속살이 야들야들한 생선을 그러 모으게 됩니다. 숲 속에서 조금 산책이라도 해봐요. 새들이 아주 넘쳐 납니다. 둥지에 남아도는 새알을 꺼내 새들을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어요. 간혹 달아날 생각조차 안하는 이 새들의 목을 비틀어 줘야 할 때도 있어요. 맘멧돼지들은 젖이 남아돌아요. 돼지들 역시 영양 과다 상태니까요. 제발 좀 젖을 짜서 없애 달라고 우리에게 통사정을 하지요. 부탁을 .. 2020. 4. 24.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기고 엮음, 예담 2011(개정판 36쇄) 1 고흐는 간곡하고 간절하게 썼다. 허례허식을 담지 않았다. 그림은 나에게 건강을 잃은 앙상한 몸뚱아리만 남겨주었고, 내 머리는 박애주의로 살아가기 위해 아주 돌아버렸지. 넌 어떠냐. 넌 내 생활을 위해 벌써 15만 프랑 가량의 돈을 썼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계획한 일의 배후에는 늘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1 고통의 순간에 바라보면 마치 고통이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끝없이 밀려와 몹시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에 대해, 그 양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밀밭을 바라보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림 속의 것이라 할지라도.2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 2020. 4. 19.
고흐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 고흐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기고 엮음, 예담 2011 ◆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 92×735cm · 1890년 5월 · 캔버스에 유채 블로그 《Welcom to Wild Rose Country》에는 캐나다의 우리 교포 헬렌님네 가족의 세계여행 기록이 생생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전에는 '예술과 낭만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1편)'에서 고흐가 1886년부터 1888년까지 2년간 살았다는 아파트 사진을 보았습니다. 고흐는 생전에는 불쌍했고, 살아 있을 때 그는 억울했어야 하는데 아직 그의 그림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어서 억울한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편지를 읽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한 푼 한 푼 모든 경비를 동생 테오에게서 .. 2020. 4. 17.
어피니티 코나 《세상 끝 동물원》 어피니티 코나 소설 《세상 끝 동물원》 MISCHLING 유현경 옮김, 문학동네 2019 1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는 처음 봤습니다. 의사 요제프 맹겔레가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합니다. 쌍둥이 아이들의 몸을 마음먹은 대로 찢어버리고, 실험용 주사액을 주입하고, 망가지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가슴이 떨린다는 느낌을 이 책으로 경험했습니다. 등뼈에 주삿바늘을 꽂고, 장기를 제거해 보고, 발목을 묶어 동물 우리에 가두고, 어린 여자애 몸을 갈라 아이를 가질 능력이 있는지 그 속을 들쑤시고 난 다음 엉성한 바느질로 봉해 놓고, 두 아이의 몸을 합쳐서 꿰매 버리고…… 그렇게 하면서 그 악마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고, 그 아이들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며 다가오게 했습니다.. 2020. 4. 10.
캐서린 앤 포터 〈마법 Magic〉 캐서린 앤 포터 Katherine Anne Poter 〈마법 Magic〉 김지현 옮김, 《現代文學》 2020년 3월호 86~90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블랑샤르 마님, 저는 여기서 마님과 마님 가족을 모시며 지내는 게 행복하답니다. 여긴 모든 게 평화롭고, 이전에 저는 오랫동안 유곽에서 일했으니까요…… 유곽이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그런 것이야……, 누구나 언젠가는 들어 알게 되니까요. 음, 마님, 저는 늘 일거리가 있는 데서 일을 하니까, 그곳에서도 온종일 굉장히 열심히 일했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봤지요. 마님께서 들으시면 믿지 못할 것들을요. 원래는 감히 마님께 그 이야기를 해드릴 생각도 없었지만, 제가 머리를 빗겨드리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실 수 있을까 해서 좀 들려드리려고.. 2020. 4. 7.
백희나 《장수탕 선녀님》 백희나 《장수탕 선녀님》 책읽는곰 2012 또 그림동화책을 보았습니다. 백희나 작가의 책. 덕지가 엄마를 따라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 "겁먹지 마라, 얘야. 나는 저기 산속에 사는 선녀란다. 날개옷을 잃어버려 여태 여기서 지내고 있지." 선녀 할머니는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모르는 척 끝까지 들어 드렸다. 덕지가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가는 이유는, 요구르트 한 병을 얻어 마시고 싶어서인데 덕지는 엄마가 사 준 요구르트를 선녀 할머니께 드렸습니다. 냉탕에서 놀아서였을까요, 머리가 아프고 콧물도 나기 시작하더니 밤중에는 너무 많이 아팠는데 그 선녀 할머니가 나타나 머리를 짚어주었고 이튿날 아침, 거짓말처럼 감기가 나았다.. 2020. 4. 5.
백희나 《구름빵》 글·그림|백희나 빛그림|김향수 《구름빵》 한솔수북 2011(초판 47쇄)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동생을 깨워 밖으로 나갔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을 엄마에게 갖다 주었더니 엄마는 구름빵을 만들었습니다. 아빠는 빵이 익는 걸 기다릴 수가 없고 비 오는 날은 길이 더 막히기 때문에 아침을 먹지 못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구름빵을 먹은 형제는 두둥실 떠오를 수 있게 되어 힘차게 날아올라 아빠를 찾아갔습니다. 구름빵을 먹은 아빠도 두둥실 떠올라 금세 회사에 도착했고 형제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집 지붕 위에 살짝 내려앉았어요. 비가 그치자 하늘에 흰 구름이 하나 둘 떠올랐어요. "있잖아, 나 배 고파." 동생이 말했어요. "하늘을 날아다녀서 그럴 거야. 우리 구름빵 하.. 2020.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