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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어피니티 코나 《세상 끝 동물원》

by 답설재 2020. 4. 10.

어피니티 코나 소설 《세상 끝 동물원》

MISCHLING

유현경 옮김, 문학동네 2019

 

 

 

 

 

 

1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는 처음 봤습니다.

의사 요제프 맹겔레가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합니다. 쌍둥이 아이들의 몸을 마음먹은 대로 찢어버리고, 실험용 주사액을 주입하고, 망가지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가슴이 떨린다는 느낌을 이 책으로 경험했습니다.

뼈에 주삿바늘을 꽂고, 장기를 제거해 보고, 발목을 묶어 동물 우리에 가두고, 어린 여자애 몸을 갈라 아이를 가질 능력이 있는지 그 속을 들쑤시고 난 다음 엉성한 바느질로 봉해 놓고, 두 아이의 몸을 합쳐서 꿰매 버리고……

그렇게 하면서 그 악마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고, 그 아이들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며 다가오게 했습니다.

 

그 현장을 펄 자모르스키와 스타샤 자모르스키 쌍둥이 자매가 전해줍니다. 두려움에 떨며, 지긋지긋해하며 읽었습니다.

 

 

2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스타샤가 방에서 나왔을 때,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머리를 기울이고 어떤 소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왼쪽 귀를 한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1

 

그는 의자를 끌고 와서 빠르게 오르는 열을 재려고 내 이마에 손을 얹었고, 작은 망치를 가져와 내 관절에 갖다 댔다. 팔과 다리는 망치의 재촉에 펄쩍 뛰어올랐고, 그의 얼굴에는 즐거움과 집중하는 기색이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 그가 내 의자 주위를 빠르게 돌자 길고 하얀 가운 소매가 내 벌거벗은 몸에 걸렸다.

"고통이 느껴지니?" 그가 망치로 두드리며 물었다. "이건 어때? 지금은?"2

 

동물원은 우리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는데, 그중 가장 가혹한 변화는 아마도 살아 있는 다른 존재와 가깝게 지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망가졌다는 것일 테다.

(…) 예컨대 이런 이야기. 우리가 오기 전 봄에 맹겔레는 두 집시 소년의 등을 맞대고 꿰맸다.3

 

그가 배를 열고 아이를 꺼내 물이 가득한 양동이에 집어넣고 산모가 보는 앞에서 익사시켰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그것이 고통의 끝이 아니었다. 그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시간을 끌었고……4

 

"너는 쓸모없어, 그렇지?" 맹겔레가 밝은 목소리로, 친절을 가장한 표정으로 그 여자에게 물었다. "너는 동물이야, 맞지? 천하고 냄새나는 동물."5

 

 

3

 

그 인간은 미녀가 찬탄받는 것조차 견디지 못했습니다. 눈에 띄었다가 자유로워졌을 때는 이미 많이 변한 다음이었습니다. 그는 미인을 두 가지로 망가뜨렸습니다.

 

오를리라는 여인의 경우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날은 아름다웠지만 바로 다음날 배를 부풀리고 다리를 소시지처럼 불룩하게 만들고 피부를 밀랍처럼 만들고 딱지가 앉게 했고, 이비는 푸프6에서 창문에 몸을 기대고 알록달록한 희귀중 새처럼 노래를 부르며 문을 두드린 남자들이 포주와 가격을 협상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행한 것은 책의 후반부는 아우슈비츠가 해체되고 '동물원'의 아이들이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이야기, 도저히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였습니다.

 

 

4

 

이것이 인간들이 한 짓에 관한 이야기이고 인간들은 지금 착하고 잘난 척하지만 이것이 겨우 칠십여 년 전에 벌어졌던 이야기라는 걸 생각하면 어떤 인간이 언제 또 어떤 일을 저지를지 누가 알겠느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혹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동물원'의 그 아이들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합니다.

 

인간의 일들은 어떻게 이처럼 불공평한지 모르겠습니다. 맹겔레는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아우슈비츠를 빠져나와 그로스로젠 수용소를 거친 다음 로젠하임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농장 검수장에서 우량 감자와 불량 감자를 분류하고 정리해서 쌓아놓는 일을 하다가 브라질에 있는 마지막 은신처에 정착해 회고록을 쓰고 음악을 듣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안락하게 살아간 그 범죄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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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4.
3. 154.
4. 229.
5. 233.
6. 성 매매 업소. 사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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