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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고흐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

by 답설재 2020. 4. 17.

고흐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기고 엮음, 예담 2011

 

 

 

 

◆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

92×735cm · 1890년 5월 · 캔버스에 유채

 

 

 

블로그 《Welcom to Wild Rose Country》에는 캐나다의 우리 교포 헬렌님네 가족의 세계여행 기록이 생생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전에는 '예술과 낭만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1편)'에서 고흐가 1886년부터 1888년까지 2년간 살았다는 아파트 사진을 보았습니다.

 

고흐는 생전에는 불쌍했고, 살아 있을 때 그는 억울했어야 하는데 아직 그의 그림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어서 억울한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편지를 읽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한 푼 한 푼 모든 경비를 동생 테오에게서 받아 생활하며 그림에 '미쳐서' 살아간다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마침내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 감금된 생활을 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괴롭고 해서 그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저 아름다운 그림 속의 사이프러스나무에 대한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사이프러스나무 옆으로, 혹은 잘 익은 밀밭 위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싶다. 이곳의 밤은 지독하게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걸 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을 소재로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이프러스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이제껏 그것을 다룬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사이프러스나무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다운 선과 균형을 가졌다. 그리고 그 푸름에는 그 무엇도 따를 수 없는 깊이가 있다. 태양이 내려쬐는 풍경 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검은 점, 그런데 이것이 바로 가장 흥미로운 검은 색조들 중 하나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해 내기란 참 어렵구나.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아니 푸른색 속에서 봐야만 한다.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이곳의 자연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속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최근에는 옆으로 별 하나가 보이는 사이프러스나무 그림을 그리고 있네. 눈에 띄일락 말락 이제 겨우 조금 차오른 초승달이 어두운 땅에서 솟아난 듯 떠 있는 밤하늘, 그 군청색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그 사이로 과장된 광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 있네. 분홍색과 초록의 부드러운 반짝임이지. 아래쪽에는 키 큰 노란색 갈대들이 늘어선 길이 보이고 갈대 뒤에는 파란색의 나지막한 산이 있지. 오래된 시골 여관에서는 창으로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키가 무척 큰 사이프러스나무가 꼿꼿하게 서 있네.

길에는 하얀 말이 묶여 있는 노란색 마차가 서 있고, 갈 길이 저물어 서성거리는 나그네의 모습도 보인다네. 아주 낭만적이고 프로방스 냄새가 많이 나는 풍경이지.

 

그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그의 이런저런 그림이 생각납니다. 저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은 이 책 엮은이가 본문 맨 마지막에 게재한 그림이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동안 이런 문장들이 눈에 띄면 당장 저 그림이 떠올라서 자주 그 페이지를 열어보곤 했습니다.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밀밭」도 있습니다. 어느 문장이 어느 그림에 대한 것인지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 사이프러스나무가 보이는 밀밭 73×93.5cm · 1889년 6월 말 · 캔버서에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