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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아멜리 노통브 《배고픔의 자서전》

by 답설재 2020. 4. 24.

 아멜리 노통브 《배고픔의 자서전》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06

 

  

 

 

 

 

 

「바누아투에는 먹을 게 사방에 널려 있어요. 힘들여 생산할 필요가 전혀 없지요. 두 손을 뻗으면 한 손에는 야자열매가, 다른 손에는 바나나 송이가 쥐어집니다. 몸을 식히려고 바닷물에 들어가 봐요. 그러면 원하거나 말거나 맛이 기가 막힌 조개, 성게, 게, 그리고 속살이 야들야들한 생선을 그러 모으게 됩니다. 숲 속에서 조금 산책이라도 해봐요. 새들이 아주 넘쳐 납니다. 둥지에 남아도는 새알을 꺼내 새들을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어요. 간혹 달아날 생각조차 안하는 이 새들의 목을 비틀어 줘야 할 때도 있어요. 맘멧돼지들은 젖이 남아돌아요. 돼지들 역시 영양 과다 상태니까요. 제발 좀 젖을 짜서 없애 달라고 우리에게 통사정을 하지요. 부탁을 들어주면 그제야 새된 울음소리를 멈춘답니다.」

그가 잠시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끔찍합니다.」(12~13)

 

배고품이 뭔지 모르는 건 비극이라고 선언한 아멜리 노통브는, 배고품(갈증)으로 일관한 자신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해뜨는 나라 일본 제국을, 그의 간결함을, 그의 어둠의 감각을, 그의 부드러움과 예의바름을 숭배했다. 눈이 부신 중화 제국의 광채, 사방을 물들인 붉은 색깔, 떠들썩한 향연의 감각, 메마름, 이런 현실의 눈부심을 내가 자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단박에 그 눈부신 현실로부터 소외되고 말았다.(87)

 

일본(슈쿠가와)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베이징, 뉴욕, 방글라데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미얀마, '허무의 나라' 라오스를 거쳐 17세에 부모의 나라 벨기에로 들어갑니다.

 

그동안 모든 것에 대한 배고픔을 경험하고, "하나라도 빠트린 건 없는지, 확실히 해두려는 생각에서 되짚어" 보면서 썼다고 했습니다. 신성(神性)과 절대적 만족감, 출생, 분노, 이해할 수 없음, 쾌락, 언어, 사고(事故), 꽃, 타인, 물고기, 비(雨), 자살, 구원, 학교, 박탈, 생이별, 유배, 사막, 병(病), 성장과 상실감, 전쟁, 적이 생겼다는 달뜬 감정, 알코올 중독, 사랑의 행복, 허공으로 날아간 사랑의 화살, 죽음, 유혹, 독서, 기아, 성장의 아름다움, 폭식과 거식증, 동경……

 

성서가 일본 시절의 훌륭한 벗이었다면, 내가 베이징에서 지내면서 주로 읽은 책은 바로 지도책이었다. 나는 나라에 굶주려 있었고, 지도들의 명료함은 나를 사로잡았다.(74)

 

방글라데시라는 나라가 가진 자원과 아름다움은 오로지 그 국민들밖에 없었다. (…)

땅바닥에 앉아 있는 남자는 코가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큰 구멍이 하나 뚫려 있어서 그 쪽으로 뇌가 들여다보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는 벵골어로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고 몇 마디 했다. 그가 말을 하면 그의 뇌가 요동을 쳤다. 이 장면에 나는 경악했다. 언어, 이것은 바로 움직이는 골이었던 것이다.(162~163)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향한 갈증인 것 같았습니다. 그 장면들이 일일이 그 색깔을 구분하기 어려운 색연필 셋트 같았습니다. 그 배고픔으로 아멜리 노통브는 작가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