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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냄새를 분류해서 보관한 거대한 집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열린책들 1991)에서 이 부분을 찾으려고 또 읽었습니다. 어디 중간쯤에 나오는 이야기인가 생각했는데 다행히 62쪽쯤에 나왔습니다. 아예 여기에 필사해 놓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처음에는 깬 상태로, 그 후에는 꿈속에서 자신의 기억에 보관된 거대한 냄새의 폐허 속을 뒤지고 다녔다. 그는 수백만 가지의 냄새를 검사해서 체계적인 질서에 따라 배열했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 섬세한 냄새와 조잡한 냄새, 악취와 향기를 따로따로 분류했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 그의 분류는 점점 더 자세해져서 냄새의 목록은 더 풍부하게 세분화되었고 그 체계가 더욱 뚜렷해졌다. 이제 곧 처음에 계획한 대로 냄새의 건물을 짓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집과 담, 계단과 탑, 지하실과 방, 감추.. 2021. 6. 24.
마이클 린치 《인간 인터넷 INTERNET OF US》 마이클 린치 《인간 인터넷 INTERNET OF US》 이충호 옮김, 사회평론 2016 사물 인터넷이 모든 것의 인터넷, 인간 인터넷이 되어가는데 대해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미래에 다가가야 한다는 전망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책인지 요약하거나 기억해야 한다면 다음 부분을 발췌하고 싶다. 서양 역사에서 무엇을 지식으로 간주할지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 결정한 주체는 교회였다. 이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은 대체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기록되는 내용을 통제하는 능력에 있었다. 교회는 대학을 운영했고, 텍스트를 (손으로) 베끼는 행위를 통제했다. 물론 인쇄 혁명 후에는 이런 상황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198) 사물 인터넷과 네트워크화된 인식 주체는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지식의 정치.. 2021. 6. 20.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2006(3판) 안티고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해서 아들 둘, 딸 둘을 둔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의 맏딸입니다. 어머니가 낳은 딸이니까 그렇게 따지면 동생이기도 하겠네요. 나는 이 비극을 읽고,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인 일이나 라이오스의 아내 그러니까 자신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한 일에 대해 그를 원망하는 건 뭔가 마땅하지 못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코린토스를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살아가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코린토스를 떠나 테바이의 .. 2021. 6. 7.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2006(3판)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장차 아들의 손에 죽게 된다는 예언을 듣고 갓난아이를 산에 갖다 버리게 했으나, 그 명령을 받은 목자가 아기를 불쌍하게 여겨 이웃나라(코린토스)의 목자에게 넘겨주었다. 코린토스의 왕 폴뤼보스를 아버지로 알고 자라난 오이디푸스도 그 예언을 듣고 코린토스를 떠난 것인데, 후일 어떤 삼거리에서 서로 길을 비키라고 다투다가 아버지(라이오스)를 죽인 다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위에 오른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가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결혼하여 아들 둘, 딸 둘을 낳게 된다. 그 사실이 드러나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도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이오카스테의 길을 따라간다. 너무나 유명한 얘기여서 .. 2021. 6. 1.
아모스 오즈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아모스 오즈 장편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최창모 옮김, 문학동네 2015 서른일곱인가에 자살한 어머니가 책에 대해 말했단다. 한번은 내가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이었을 때, 우리는 약국인지 어린이 신발 가게인지로 가는 마크셰르 회사의 버스 맨 끝 의자에 앉았는데 어머니는 내게, 사람만큼이나 책도 세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반면, 차이점은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상대로부터 더 이상 어떤 이점이나 쾌락이나 이익이나 아니면 최소한 좋은 느낌을 얻을 수 없는 때가 오면 상대를 버리는 반면, 책은 절대로 상대를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연히 너는 때때로, 아마도 몇 년 동안, 혹은 심지어 영원히, 책을 저버리기도 할 거라고. 그렇지만 네가 책을 배신해도 책은 절대로 네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고. 책은 침묵하며.. 2021. 5. 2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할머니의 목소리 전화를 통해 듣는 할머니 목소리가 묘사되어 있는 걸 봤습니다. 2010년 12월 17일 늦은 밤, 그런 할머니는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기록되는 할머니, 이렇게 소중한 목소리로 기억되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 것인지 한 자 한 자 필사를 하던 초겨울 밤이 있었습니다. 그 밤,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 이 포스팅에는 댓글란을 두지 않았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할머니가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적마다 나는 할머니가 내게 하는 말을 언제나 두 눈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그 얼굴의 펼쳐놓은 악보에 비추어 따라 읽었을 뿐 할머니의 목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는.. 2021. 5. 3.
김초엽(중편소설) 《므레모사》 김초엽(중편소설) 《므레모사》 《현대문학》 2021년 3월호 180~240 재미있다. 이런 소설 한 편 눈에 띄지 않으면 그 월간지를 들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체르노빌 혹은 후쿠시마의 대형 오염사고 이후의 세상을 연상하게 하는 비밀의 도시 델프스의 '므레모사'라는 곳을 찾아가는 방문단(유안, 레오, 프리야, 리우텐린, 탄, 주연과 선호 남매)과 므레모사로의 귀환자들 간에 벌어지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나(유안)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낀 무용수다. 밤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실의에 빠진 그녀를 한나라는 여성이 붙잡고 헌신적으로 돕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실을 겪지만 그런데도 그 상실에 적응해나가요. 그게 인간이 가진 몇 .. 2021. 4. 8.
아모스 오즈 《숲의 가족》 아모스 오즈 《숲의 가족》 SUDDENLY IN THE DEPTH OF THE FOREST 박미영 옮김, 창비 2012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마을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마을 아이들의 부모들이 아직 어렸을 때, 어느 춥고 축축한 겨울밤, 하마, 닭, 물고기, 파충류 같은 마을에 있던 모든 동물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마을에는 어른들과 아이들만 남게 되었다. 임마누엘라는 그때 열살 소녀였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점박이 암고양이 타마를 그리워하며 몇주 동안 울었다. 그 고양이는 새끼를 세 마리 낳았는데 두 마리는 점박이였고 한 마리는 노란 털의 장난꾸러기였다. 그녀석은 수건 속에 숨거나 양말을 찾아내 굴리는 걸 좋아했다. 그 끔찍한 밤, 암고양이와 새끼들도 사라졌다. 고양이들이 사라진 다.. 2021. 4. 4.
아모스 오즈《첫사랑의 이름》 아모스 오즈 《첫사랑의 이름》 Soumchi: A Tale of Love and Adventure 정회성 옮김, 비룡소 2019 나는 맥이 쏙 빠졌다. 생각할수록 내 신세가 처량했다. 알도는 내 자전거를 가져갔을 뿐 아니라 계약서에 서명까지 하게 했다. 고엘은 멋진 전동 기차를 빼앗아갔다. 잘 길들여진 늑대는 내게서 도망쳤다. 녀석은 지금쯤 숲 속을 헤매고 다닐 것이다. 우리 집? 필요 없다. 나는 다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는 집의 흙먼지를 내 발에 묻히지 않을 것이다. 그 집에는 영원히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 에스티? 에스티는 나를 미워하고 있다. 비열한 알도 녀석은 연애시가 적힌 내 수첩을 훔쳐서 깡패 같은 고엘에게 팔아넘겼다.(89) '숌히'(닉네임)의 처지는 이처럼 딱하지만 그는 겨우 열한 살이.. 2021. 3. 30.
성삼제 《독도와 SCAPIN 677/1》 성삼제 《독도와 SCAPIN 677/1》 일본 영토의 범위를 정의한 지령 우리영토 2020 1 독도는 우리 땅이다.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는 차고 넘친다. 우리 땅을 지키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더 조사하고 연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증거 자료가 많이 쌓여 있다. 대한민국은 독도를 스스로 지킬 힘이 있는 국가이다. 찾아다니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독도를 교육하고 독도연구를 계속하는 것은 독도를 통하여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시작된 서문부터 끝까지 부사·형용사가 동원되지 않는 문장이 이어진다. 시원하고 분명하다. 2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항복했다. 1951년 9월 8일, 6년간의 군정 통치를 거쳐 연합국과 일본은.. 2021. 3. 27.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걷기 예찬》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10(초판 16쇄)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보던 고급 에세이의 이 분위기는 마지막까지 거의 변함없다. 재미있는 일화도 몇 편 들어 있고 자주 장자크 루소, 피에르 상소, 패트릭 리 퍼모, 바쇼, 스티븐슨의 문장이 등장한다. 걷기가 죽음을 유보시켜 준다는 걸 강조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 2021. 3. 25.
《산해경山海經》 정재서 역주 《산해경山海經》 민음사 2012 무슨 경전(經典)인 줄 알았다. 화엄경(華嚴經), 성경(聖經),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같은 경전이 아니라 이름만 그럴듯한 사이비 경전이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책을 사놓고 10년 가까이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나에게는 사이비 경전도 있다.' 이렇게 시작된다. 남산경의 첫머리는 작산이라는 곳이다. 작산의 첫머리는 소요산이라는 곳인데 서해변에 임해 있으며 계수나무가 많이 자라고 금과 옥이 많이 난다. 이곳의 어떤 풀은 생김새가 부추 같은데 푸른 꽃이 핀다. 이름을 축여(祝餘)라고 하며 이것을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다. 이곳의 어떤 나무는 생김새가 닥나무 같은데 결이 검고 빛이 사방을 비춘다. 이름을 미곡(迷穀)이라고 하며 이것을 몸에 차면 길을 잃.. 202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