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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by 답설재 2021. 6. 7.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2006(3판)

 

 

 

 

 

 

 

 

안티고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해서 아들 둘, 딸 둘을 둔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의 맏딸입니다.

어머니가 낳은 딸이니까 그렇게 따지면 동생이기도 하겠네요.

 

나는 이 비극을 읽고,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인 일이나 라이오스의 아내 그러니까 자신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한 일에 대해 그를 원망하는 건 뭔가 마땅하지 못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코린토스를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살아가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코린토스를 떠나 테바이의 왕이 되어 실컷 살다가 코린토스의 왕 폴뤼보스는 자신을 낳은 아버지가 아니고 자신의 생부는 자신이 길에서 다투다가 죽인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 세상 누군들 그걸 사전에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더는 살아갈 수가 없어서 세상을 떠납니다. 왕위는 어머니 이오카스테의 남동생 그러니까 외삼촌이자 처남인 크레온에게 맡기면서 딱 한 가지 자신의 아들 딸만은 잘 보살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지난번 《오이디푸스 왕》 독후감에 오이디푸스의 그 부탁을 일부 옮겨 놓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크레온은 그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오이디푸스의 아들, 딸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 싶어서 오이디푸스 왕이 마지막에 애끓는 호소를 한 부분을 다시 읽어봤더니 아하!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에게 그들을 잘 보살펴주겠다는 대답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인간세상은 무섭구나 싶었습니다.

 

두 아들은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한 명(에테오클레스)은 테바이의 장군이 되어, 다른 한 명(폴뤼네이케스)은 테바이를 공격하는 연합군의 장군이 되어 싸우다가 죽었는데 안티고네는 테바이를 공격하다가 죽어서 땅에 묻히지도 못한 오빠를 장사 지낸 일 때문에 크레온의 미움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크레온

  그런데도 너는 감히 법을 어겼단 말이냐?

안티고네

  네. 그 포고를 나에게 알려주신 이는 제우스가 아니었으며,

  하계(下界)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또 그대의 명령이, 신들의 확고부동한 불문율들을

  죽게 마련인 한낱 인간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불문율들은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나는 한 인간의 의지가 두려워서 그 불문율들을 어김으로써

  신들 앞에서 벌을 받고 싶지가 않았어요.

  나는 언젠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어찌 모르겠어요. 그대의 포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

 

나는 그동안 안티고네가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을 변호하는 문인들의 글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이 비극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달리 극이 끝나기 전에 악인이 그 '천벌'(天罰 옛 어른들이 이야기하던 그 벌)을 받는다는 점이 시원하고 즐겁고 기뻤습니다. 우리의 이 세상 이 비극들도 그런 비극이면 좋겠습니다.

 

테바이 사람들 모두 고집을 꺾지 않는 크레온을 원망했습니다. 안티고네를 사랑하는 그의 아들 하이몬도 연인 안티고네의 죽음을 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아들의 죽음을 들은 그의 아내 에우뤼디케까지도 남편의 악운을 빌며 자살했으므로 크레온은 결국 오이디푸스의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크레온

  나를 길 밖으로 데려 나가거라. 이 어리석은 인간을!

  나는 본의 아니게, 내 아들아, 너를 죽였구나.

  그리고 그대까지도. 내 아내여! 아아 나야말로 비참하구나.

  나는 어디로 시선을 돌려야 하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