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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by 답설재 2021. 6. 1.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2006(3판)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장차 아들의 손에 죽게 된다는 예언을 듣고 갓난아이를 산에 갖다 버리게 했으나, 그 명령을 받은 목자가 아기를 불쌍하게 여겨 이웃나라(코린토스)의 목자에게 넘겨주었다.

코린토스의 왕 폴뤼보스를 아버지로 알고 자라난 오이디푸스도 그 예언을 듣고 코린토스를 떠난 것인데, 후일 어떤 삼거리에서 서로 길을 비키라고 다투다가 아버지(라이오스)를 죽인 다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위에 오른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가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결혼하여 아들 둘, 딸 둘을 낳게 된다.

그 사실이 드러나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도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이오카스테의 길을 따라간다.

 

너무나 유명한 얘기여서 굳이 읽을 필요도 없겠다 싶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처음부터 긴장감을 가지게 해서 읽는 나는 좋지만 '이렇게 해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끝까지 끌고 가려나' 했는데

"그리스 비극의 최고 걸작!"

과연, 허사(虛辭)가 아니었다.

이런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눈은 자꾸 감기고 흐릿해지는데 읽을 책은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계획 같은 게 필요가 없게 되었다

뭘 좀 써볼까 했는데 우선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하니까 시시한 걸 쓰고 말고 할 시간도 없다.

 

다음은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 절규였다.

 

나에 대해서는―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나의 선조들의 이 도시가 나를 주민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라.

그 대신 산에서 살도록 해주구려. 저기 나의 산이라고 일컬어지는

키타이론에서, 그곳은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적에

나의 무덤으로 정한 곳이니 나를 죽이려고 했던

그분들의 뜻에 따라 나는 그곳에서 죽고 싶구려.

하나 이것만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결코 병이나

다른 일로 죽지 않을 것이다. 기구한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죽음에서 구원받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나의 운명일랑 제멋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게나.

하나 내 자식들에 대해서는―크레온, 내 아들들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게나. 그 애들은 사내들이라

어디 가든 생계에 부족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쌍하고 가련한 내 두 딸들로 말하면

내 상을 따로 차리는 것을 본 일이 없고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무엇이든 내가 먹을 것을 나눠 먹었으니

이 애들만은 잘 돌봐주구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두 손으로

그 애들을 만져보고 나의 슬픔을 실컷 울도록 해주구려.

허락해주구려, 왕이여! 허락해주구려. 그대 고귀한 마음씨여!

...(중략)...

오오, 메노이케우스의 아들이여, 이 애들의 어버이인

우리들은 둘 다 없어졌으니 이 애들에게는 그대가

단 한 분의 아버지로 남은 셈이구려. 그러니 그대의 친척들인

이 애들이 가난하고 결혼도 못한 채 떠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두지 말지며

내가 겪은 불행의 수준으로 이 애들을 낮추지 말아 주구려.

이 애들을 불쌍히 여겨다오. 그대도 보다시피 이 애들은

이렇듯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네. 그대가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약속의 표시로, 관대한 이여, 그대의 손으로 이 애들을 어루만져 주게나.

...(후략)...

 

 

나는, 내 운명은 저 오이디푸스 왕보다는 덜 불우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