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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할머니의 목소리

by 답설재 2021. 5. 3.

전화를 통해 듣는 할머니 목소리가 묘사되어 있는 걸 봤습니다.

2010년 12월 17일 늦은 밤, 그런 할머니는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기록되는 할머니, 이렇게 소중한 목소리로 기억되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 것인지 한 자 한 자 필사를 하던 초겨울 밤이 있었습니다.

 

그 밤,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 이 포스팅에는 댓글란을 두지 않았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할머니가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적마다 나는 할머니가 내게 하는 말을 언제나 두 눈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그 얼굴의 펼쳐놓은 악보에 비추어 따라 읽었을 뿐 할머니의 목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전부 다이고, 얼굴표정을 동반하지 않은 채 그렇게 목소리만 홀로 나에게 와 닿는 순간 내게 그 목소리는 어딘가 구성 비율이 달라진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얼마나 부드러운가를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하기야 그 목소리가 어쩌면 지금까지 그토록 부드러웠던 적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내가 멀리 떨어져 쓸쓸해하고 있다고 느끼고서 여느 때 같으면 교육의 ‘원칙’상 억눌러 숨겼을 애정의 토로에 마음놓고 빠져들어도 괜찮다고 믿었을 테니까 말이다. 부드러웠지만 또한 얼마나 슬픈 목소리였던가. 우선, 모든 엄격함을, 남에게 저항하는 모든 요소를, 모든 이기심을━인간의 목소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거의 다 걸러낸 다정스러움 그 자체 때문에! 다정다감하다 못해 연약해져버린 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만 같았고 순수한 눈물의 홍수 속으로 소멸될 것만 같았다. 이윽고 얼굴이라는 가면이 없이 들은 그 목소리만을 내 곁에 가지게 되자 나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 목소리에 금이 가게 만든 온갖 슬픔들을 생전 처음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그런데 따로 혼자서 찾아왔기에, 가슴을 찢는 듯한 그런 새로운 인상을 나에게 준 것은 유독 목소리만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홀로 떨어진 그 목소리의 격리는 또 하나의 격리, 즉 처음으로 나와 떨어진 할머니의 격리의 한 상징이며 환기며, 직접적인 결과와도 같은 것이었다.

평상시의 생활에서 할머니가 나에게 끊임없이 일러주시는 훈계나 금기, 내가 할머니에게 품고 있는 애정을 약화시키는 복종의 따분함이나 반항의 열기는 이 순간에 싹 가시고 말았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지 몰랐다(할머니가 이제 더 이상 나를 당신 가까운 곳에 두고 당신의 법에 따르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시에르에 아주 머물러 있기를, 어쨌든 가능한 한 이곳의 체류를 연장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표시하면서 그렇게 하면 내 건강과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또한 내가 귀에 바싹 갖다 대고 있는 이 작은 종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우리들 상호간의 애정, 바로 그것이었으니, 그것은 이제 여태껏 날마다 그 애정과 균형을 이루어온 반대쪽 압력을 말끔히 털어버리니 이제부터는 억누를 수 없는 것이 되어 나를 송두리째 떠들어올리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나한테 이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니까 내 마음속에서는 돌아가고도 싶은 불안하고도 미칠 것 같은 욕구가 일어났다. 지금부터 할머니가 내게 맡겨주는 이 자유, 할머니가 승낙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 자유가 나에게는 돌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났을 때(나는 아직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영영 나를 버리고 가게 될 때) 얻게 될 그 자유 못지않게 슬프게만 여겨졌다. 나는 “할머니, 할머니”라고 외쳐댔다. 할머니를 꼭 껴안고 싶었지만 내 곁에는 오직 그 목소리, 할머니가 앞으로 죽으면 아마도 나를 찾아 되돌아올지도 모르는 유령만큼이나 손에 만져지지 않는 그 유령뿐이었다. “말씀하세요.” 그러나 그때 나는 더욱 외로운 상태로 버림받은 채 별안간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할머니는 더 이상 내 목소리를 못 듣게 되었고 더 이상 나와 통화 중이 아니게 되었으니 우리는 서로 마주 보기를, 서로에게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을 멈추어버렸다. 나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면서 계속하여 할머니를 불러댔고, 할머니 쪽에서 오는 부르는 소리들도 마찬가지로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전에, 아주 먼 지난날, 어린애였던 내가 군중 속에서 할머니를 잃어버렸던 어느 날 느꼈던 바로 그 불안감을 맛보며 더듬거렸다. 그것은 할머니를 못 찾을까봐서라기보다 할머니가 나를 찾고 있는 것을 느끼는 데서 오는 불안, 내가 할머니를 찾고 있다고 할머니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느끼는 데서 오는 불안, 이제 더 이상 내 말에 대답을 할 수 없게 된 이들에게 말을 하는 날, 그들에게 말하지 못한 그 모든 것, 나는 괴롭지 않다고 확신의 말을 들려주고 싶은 이들에게 말을 건네게 되는 날, 내가 느낄지 모르는 그 안타까움과 상당히 비슷한 그런 불안이었다. 내가 지금 막 저 어둠 가운데 길을 잃은 채로 버려둔 것은 벌써 어떤 그리운 분의 그림자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나는 홀로 전화기를 앞에 두고 부질없이 불러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 할머니” 하고 마치 혼자 남은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의 이름을 불러대듯 외쳤다. 나는 우체국에서 나와 레스토랑으로 로베르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파리에 돌아오라는 전보가 쉬 올 것 같은데, 어찌 되든 간에 열차시간표라도 알아두고 싶다고 그에게 말할 생각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김화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현대문학』 2010.5월호, 연재 제17회, 203~206쪽) 중 「동시에르에서 할머니와의 전화통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