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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김초엽(중편소설) 《므레모사》

by 답설재 2021. 4. 8.

  김초엽(중편소설) 《므레모사》

《현대문학》 2021년 3월호 180~240

 

 

 

 

 

 

 

재미있다.

이런 소설 한 편 눈에 띄지 않으면 그 월간지를 들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체르노빌 혹은 후쿠시마의 대형 오염사고 이후의 세상을 연상하게 하는 비밀의 도시 델프스의 '므레모사'라는 곳을 찾아가는 방문단(유안, 레오, 프리야, 리우텐린, 탄, 주연과 선호 남매)과 므레모사로의 귀환자들 간에 벌어지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나(유안)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낀 무용수다. 밤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실의에 빠진 그녀를 한나라는 여성이 붙잡고 헌신적으로 돕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실을 겪지만 그런데도 그 상실에 적응해나가요. 그게 인간이 가진 몇 안 되는 훌륭한 점이죠. 회복하고 나아가는 것 말이에요. 저는 당신에게서 그 놀라운 용기를 봐요."

 

한나는 그런 식으로 그녀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 주려고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그 상실에 적응했다고, 회복했다고, 나아졌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기에 쓰긴 좀 그렇지만 나(파란편지)는 내 입장을 생각하며 유안이 어떻게 하나, 그 실의를 딛고 일어서나, 실의에 빠져서라도 삶을 이어가나... 지켜보며 읽었다.

그녀가 좀비들이 산다고도 하고 깨끗하게 복원되어 새 삶을 살아간다고도 하는 델프스 복원기지 '므레모사' 방문단에 합류한다.

 

"..... 사실 드론들이 온 세계의 비밀 구역을 헤집어놓고 다니는 현대문명에서 이런 곳은 흔치 않잖아요. 어떤 이야기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자신이 므레모사의 풍경을 실제로 봤대요. 아주 느리고, 기이하고, 뒤틀린 사람들이 마치 나무처럼 우뚝 서 있었다고 묘사했죠. 전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다고...... 그게 마치 그림처럼 제 머릿속에 남았어요. 각인되었죠. 지어낸 이야기라고 확신하면서도 그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어느 의사가 묘사한 글을 보면 그곳의 진실은 이런 곳이다.

 

대피 명령을 거부한 사람들, 밖에서 살기를 원치 않았던 귀환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신체를 변화를 겪었다. 오시언에 과량 노출된 귀환자들은 변이되고 있었다. 그들은 흉측한 외모를 갖게 되었고, 느리게 움직였고, 발성기관을 잃어갔다. 거의 나무와 같은 형태로 기이하게 확장되었으며 극도로 느린 물질대사와 호흡, 그리고 생활 방식을 갖게 되었다. 덜 변이된 귀환자들이 더 많이 변이된 귀환자들을 도왔다. 그런 도움이 없으면 그들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우리 의료진은 그들에게 므레모사 바깥으로 나올 것을, 도시 가까이에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제염작업이 되지 않은 므레모사 내부로 의료진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강제 이송을 시도했고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 의료진을 해치고 탈출하여 다시 돌아간 사건 이후로 이르슐은 므레모사를 폐쇄했지만,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설득하고 도우러 므레모사로 향했다.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의문이 있다. 왜 어떤 이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삶을 거부하는가. 왜 비이성적으로 스스로를 해치려드는가. (......) 단 한 번 므레모사로 간 적이 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떠오른다. 그곳에서 나는 놀랍고 끔찍한 것을 보았다. 움직이는 것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경배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복종했다. 이미 죽어버린 존재들을 위해. 그 관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왜 가능한지는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나 믿음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듯했다. 그것은 몹시 기이한 풍경이자 종교적인 풍경이었다. 므레모사에서는 삶의 권력을 고정된 것들이 쥐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끝내 설득할 수 없었다.

 

방문단 중 다섯 명이 이미 '귀환자들'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져버리고(그 좀비들의 세상에 남기로 하고), 유안은 그 함정을 예상한 레오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장면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아니었다. 소설은 대부분 그렇게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절단된 다리의 고통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가 없는 유안은 그곳에서의 죽음을 선택한다.

 

내가 더 이상 아름답지도 강하지도 않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종종 궁금했지만 그 결말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질문도 그만두었다. (......)

하지만 새벽이 되면 나는 알 수 있었다. 고요와 적막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깊은 밤이 되면 바로 이곳이야말로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흔들림도 뒤척임도 없는 부동의 장소. 움직임이 없는 몸. 모든 것이 멈춰 선 몸.

그 몸 안에서 나는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자유로웠다.

 

유안은 므레모사에서 그런 상태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제발, 죽지는 마. 살아 있어. 어딘가에 살아 있으란 말야."

모든 움직임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고백할 때 한나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유안은 그렇게 방사능에 오염되어 눈만 깜빡이는 그 귀환자들처럼 살아 있고 싶었던 것일까?

그 비밀의 땅 므레모사에 남기로 한 것. 그곳에서의 죽음을 선택한 것.

 

그럼 나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나의 고통은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