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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산해경山海經》

by 답설재 2021. 3. 17.

정재서 역주 《산해경山海經

민음사 2012

 

 

 

 

 

 

 

무슨 경전(經典)인 줄 알았다. 화엄경(華嚴經), 성경(聖經),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같은 경전이 아니라 이름만 그럴듯한 사이비 경전이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책을 사놓고 10년 가까이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나에게는 사이비 경전도 있다.'

 

이렇게 시작된다.

 

남산경의 첫머리는 작산이라는 곳이다. 작산의 첫머리는 소요산이라는 곳인데 서해변에 임해 있으며 계수나무가 많이 자라고 금과 옥이 많이 난다. 이곳의 어떤 풀은 생김새가 부추 같은데 푸른 꽃이 핀다. 이름을 축여(祝餘)라고 하며 이것을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다. 이곳의 어떤 나무는 생김새가 닥나무 같은데 결이 검고 빛이 사방을 비춘다. 이름을 미곡(迷穀)이라고 하며 이것을 몸에 차면 길을 잃지 않는다.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긴꼬리원숭이 같은데 귀가 희고 기어 다니다가 사람 같이 달리기도 한다. 이름을 성성(狌狌)이라고 하며 이것을 먹으면 달음박질을 잘하게 된다. 여궤수가 여기에서 나와 서쪽으로 바다에 흘러드는데 그 속에는 육패(育沛)가 많고 이것을 몸에 차면 기생충병이 없어진다.(51)

 

재미있다.

 

다시 동쪽으로 400리를 가면 단원산이라는 곳인데 물은 많으나 초목이 자라지 않고 올라갈 수가 없다.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너구리 같은데 갈기가 있다. 이름을 유(類)라고 하며 저 홀로 암수를 이루고 이것을 먹으면 질투하지 않게 된다.(54~55)

 

신기한 것 투성이다.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기산이라는 곳인데 그 남쪽에서는 옥아 많이 나고 북쪽에서는 괴상한 나무들이 많이 자란다.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양 같은데 아홉 개의 꼬리와 네 개의 귀를 갖고 있고 눈은 등 뒤에 붙어 있다. 그 이름을 박이(猼訑)라고 하며 이것을 몸에 차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이곳의 어떤 새는 생김새가  닭 같은데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눈, 여섯 개의 발과 세 개의 날개를 갖고 있다. 그 이름을 창부(창부)라고 하며 이것을 먹으면 잠이 없어진다.(55)

 

각 지역의 위치, 자연환경, 산물, 특이한 인간, 동식물 등을 소개한 박물지? 지리지? 해설은 길고 내용도 어려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이 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변하면 인간들도 이렇게 기록될까? "인간이라는 것들은 만물 중 제일 잘난 것처럼 행세했고 대개 종족별로 몇 가지 동식물을 가까이하며 지냈지만 같은 종족끼리도 극렬하게 다투었고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고 지내다가 지구를 완전 망치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어쩌고 저쩌고..."

 

등장하는 동물들은 사람에게 잡아먹히거나 오히려 잡아먹어버리거나, 사람이 잡아먹으면 좋은 수가 생기거나 변고가 생기거나 세상이 좋아지기도 한다.

사람의 얼굴을 한 동물도 자주 나온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싶었다. 짐승이나 물고기 같은 것들을 한참 바라보면 그게 사람 얼굴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얘기가 아닌가?

 

전체적으로 따스한 느낌이 나는 이 책을 역사가나 시인, 소설가들이 읽으면 좋은 영감을 얻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한 편의 이야기가 되어 있는 짤막한 문장을 여럿 보았다.

'만물박사'에게도 당연히 필독서가 될 것이다.

해경(海經)에는 이런 내용도 보였다.

 

조선이 열양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이다. 열양은 연에 속한다.(277)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과 천독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327)

 

우리 조선을 이야기한 것이겠지? 그런데 "물가에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 글쎄, 이 부분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인성교육진흥법' 같은 건 없어도 기본적으로 심성이 착한 사람들은 언제 어느 나라에서나 남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았는가. 하필 조선이라고 그랬을까.

  

호랑이 타기(275), 인어(278), 사람의 머리를 한 용(281), 대인국 소인국(286), 미혼남 미혼녀(287), 여우(288), 기우제(293), 평화로운 나라(306), 시와 같은 문장(옥야에서는 봉새의 알을 먹고 단 이슬을 마신다, 308), 장수국(310), 뭇 새들이 깃털을 가는 곳(320), 우 임금 설화(322), 정말 무서운 사람(331), 최초의 가무(336) 등 신기한 내용들을 다 옮겨놓고 싶었지만 수다스럽기도 하고 눈도 어려워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좋은 책을 사이비 경전으로 간주하며 지내기도 하는 우스운 존재다. 누가 내 책장을 들여다보며 내게 물었다고 치자. "저게 뭐죠, 저 산해경이라는 책?"

"아~ 그거요? 사이비 경전요."

그가 뭐라고 생각했겠는가. '아, 이 우스운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