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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김애란 산문 《잊기 좋은 이름》

by 답설재 2021. 3. 2.

김애란 산문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2019

 

 

 

 

 

 

 

시인, 소설가들의 수필집은 '수필집'이라 하지 않고 굳이 '산문'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 왜 '산문'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이 책도 그런 '산문'이고, 젊은 소설가의 '첫 산문'이라니까 어떤 책인지 알 것 같았다.

 

30여 편이나 되지만 일단 두어 편 읽어보자 싶었는데 120여 쪽을 읽을 때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작가의 산문은, 화장하듯 색칠을 해서 그들의 삶은 시인, 소설가가 아닌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느낌을 주거나 한결같이 현학적인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꾸밈없고 훈훈하고 재미있어서 내가 이 작가의 소설을 읽지 못한 것이 겸연쩍고 미안했다. 어디서 들은 것 같은『두근두근 내 인생』『비행운』『바깥은 여름』을 썼다고 한다.

 

그동안 산문집을 낸 작가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것 보세요! 나는 이런 산문이 좋아요. 젊은 소설가의 이야기인데 무르익은 느낌이었어요. 굳이 현학적일 필요가 있나요? 재미있고 꾸밈없고 그래서 좋은데 다른 뭐가 필요한가요? 그렇다고 내가 덜 생각하게 되거나 덜 배우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하필,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무슨 재미야?' 할 산문("부사副詞와 인사") 시작 부분을 옮겨 써 보고 싶었다. 정말로 재미있는 산문은 왠지 옮겨 쓰기가 미안했다.

 

나는 부사를 쓴다. 한 문장 안에 하나만 쓸 때도 있고, 두 개 이상 넣을 때도 있다. 물론 전혀 쓰지 않기도 한다. 나는 부사를 쓰고, 부사를 쓰면서, '부사를 쓰지 말아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한다. 나는 부사를 지운다. 부사는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버려지는 단어다. 부사가 있으면 문장의 격이 떨어지는 것 같고 말의 진실함과 긴장이 약해지는 것 같다. 실제로 훌륭한 문장가들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부사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나는 부사가 늘 걸린다. 부사가 낭비된 걸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문장을 고쳐 읽게 된다. 한 번은 문장 그대로, 또 한 번은 부사를 없애고. 그러곤 언제나 나중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문장에 부사가 있었다는 걸 부사가 없는 자리를 보며 기억한다. 부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모른다. 나는 '부사' 하고 발음해본다. 그 이름 어감 한 번 지루하다.

 

나는 부사가 걸린다. 나는 부사가 불편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조그맣게 한다. 글 짓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부사를 '꽤'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매우' 좋아하며, 절대, 제일, 가장, 과연, 진짜,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등단한 뒤로 이렇게 한 문장 안에 많은 부사를 마음껏 써보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참' 좋다.

 

...(후략)... (86~87)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버리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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