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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소설가들에게 :「페루지노 포츠 씨의 인생길」(단편소설)

by 답설재 2021. 1. 28.

「페루지노 포츠 씨의 인생길」

  A Passage i the Life of Mr. Perugino Potts

  윌키 콜린스Wilkie Collins, 박산호 옮김

《현대문학》 2020년 12월호

 

 

 

 

 

 

 

소설가들에게는 유치하게 들릴 소리겠지만, 소설을 좋아하며 마침내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늙어가는 나로서는 이렇게 주문하고 싶다.

"소설가님! 얼른 이렇게 좀 재미있는 소설 좀 써주세요. 나 죽기 전에! 그럼 그 소설책을 꼭 사볼게요. 이 소설가 대단하다고 소문도 낼게요."

 

18○○년 12월 7일―로마에 온 지 막 일주일이 됐는데 나는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나와 같은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 '영원의 도시'의 유물들에 대해 쓰는 것으로 이 결심을 실행할 것이다. 나는 그런 건 쓰지 않겠다. 나는 그보다 더 흥미로운 주제인 나 자신에 대해 쓰겠다.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역사화를 그리는 화가로서 가까운 장래에 내 전기가 나올 것 같은데 그때 나에 대한 개인적이고 상세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아 있는 내 친구들은 분명 나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기억하리라고 굳게 믿지만, 대체로 그런 자세한 사정은 내가 직접 전기 작가에게 제공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미래의 내 전기 작가는 내가 묘사한 나의 모습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그림도 그리니, 내 성격 묘사도 내가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새 일기장을 시작하게 됐으니 마침 그렇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고, 냉큼 그 기회를 잡을 수밖에!

나는 요람에 있을 때부터 예술가가 될 운명이었다. (후략)

 

 

이 화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 화가의 친구인 출판사 사장의 쪽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앞서 나온 단락에 이어 편집자가 남긴 쪽지

 

'도주'라는 불길한 단어와 함께 포츠 씨의 일기는 거기서 중단됐습니다. 내가 이 원고를 입수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전에, 런던의 내 서재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느닷없이 방문이 요란하게 열리더니, 그 박복한 포츠 씨가 머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진 상태로 눈을 부라리면서 정신없이 뛰어 들어왔습니다.

"이걸 출간해줘!" 재능은 있지만 불행한 내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날 위해 영국 국민들이 협조해서 날 보호할 수 있게 요청해줘! 마르체시나가 날 쫓고 있어. 그 여자가 나를 따라 영국까지 왔어. 지금 이 거리 끝에 있어! 안녕, 안녕, 영원히 안녕!"

"마르체시나가 누구야? 자넨 어디로 가는 건가?" 경악한 내가 소리쳤습니다.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외딴섬의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깊은 동굴에 숨으러 갈 거야!" 포츠는 그렇게 외치면서 미친 사람처럼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나는 거리가 보이는 창가로 달려갔다가, 때맞춰 내 친구가 나는 것처럼 빠르게 도망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의 뒤를 따라 어마어마하게 비대한 체구의 여자가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자세로 달음박질치고 있었습니다. 저 여자가 마르체시나일까요? 내 친구를 위해 나는 부디 그녀가 마르체시나가 아니길 간절히 빕니다.

 

 

사실은 여기에 옮겨쓴 두 부분이 이 소설의 첫 부분이고 끝부분이다. 1824년 영국 런던에서 풍경화가 윌리엄 콜린스의 장남으로 출생한 작가 윌키 콜린스는 10대 시절 사립 기숙학교에 다니다 한 친구에게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쓸데없는 소리지만 소설이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나는 평생 '어디 재미있는 소설 없나?' 그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