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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62

텔레비전이나 보기 2018.1.10 딸아이가 돌아갔습니다. 지난해 12월 9일에 와서 달포쯤 있다가 오후 6시 반에 이륙한 비행기를 탔는데 밤이 이슥하지만 아직 반도 가지 못했습니다(2018.1.13.토. 22:58). 항공로를 모르니까 어디쯤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공항에서 돌아와 괜히 걔가 있던 방을 들여다보다가 텔레비전 앞에서 꼼짝 않고 세 시간이나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뭘 하긴 해야 하는데…….' 강박감인지 평생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그 느낌이지만 정작 꼭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오늘은 그 앞에 더 오래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확인해보면 흘러갔고 또 흘러가고 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쉬지 않고 그 걸음으로 가고 있을 뿐이고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니까 이렇게 지낼 뿐입니다. 바보처럼 하고.. 2018. 1. 14.
"죽음은 져야 할 짐이고…" 찰스 부카우스키(Charles Bukowski)에 관한 기사를 봤습니다.1 거친 삶과 가식 없는 문체로 유명한 그는 묘비에 '애쓰지 마라(Don't Try)'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 참, 이런 엉터리가 있나 싶지만 때론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노동자 아버지가 "불 꺼!" 하고 소리를 질러서 침대 시트 속에 전등을 넣고 책을 읽다가 시트에 불이 붙은 적도 있을 정도였는데 대학을 중퇴하고 첫 단편을 발표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 날품팔이 잡역부, 철도 노동자, 트럭 운전사, 경마꾼, 주유소 직원, 우편집배원 같은 일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얼마나 술을 마셔댔던지 어느 날 입과 항문으로 피를 분수처럼 쏟아냈답니다. 쉰 살 때 돌연 "우체국 의자에 앉아 죽고 싶지 않아!"라며 사표를 내고 타자기를 구해서 .. 2018. 1. 7.
"어~허!" "하이고~"… 1 앉았다 일어선다든가 자동차에서 내릴 때, 무슨 물건을 들 때, 어쨌든 몸을 좀 움직일 때 흔히 그런 소리를 냅니다. 요즘 나이로는 늙은이 축에도 들지 못하지만 꼴 같지 않게 지병을 얻은 후에 이렇게 된 것인데, 아내는 그걸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는 나나 듣는 쪽이나 버릇이 되어서 듣는 쪽에서 귓전으로 들을 땐 별 반응이 없지만 의식적으로 들을 땐 즉시 한 마디 합니다. "저런 소리 좀 내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아이, 듣기 싫어!" 2 그럴 때는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면 "파이팅!" 하며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하나 둘 셋!" 하고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드는 것과 같다고 때마다 말을 바꾸어가며 변명합니다. 웃기는 설명이죠. 그러나 아내는 웃지 않습니다. 3 교사가 되어 처음 찾아간 학교에서 만난 K.. 2017. 12. 30.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 1 주말 신문에서 "대통령 3명 염한 '무념무상'의 손"이라는 대담 기사를 봤습니다.1두 면에 걸친 기사를 부담스러워하다가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라는 소제목을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인사할 때 유족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염할 때 참여하시라고 권합니다. 마지막엔 얼굴 보고 만져 드리고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나아요. 울음은 전염됩니다. 고인 수의에 눈물 떨구는 거 아녜요. 그럼 무거워서 못 떠납니다. 귀가 제일 나중에 닫히니까." ―무슨 뜻인가요? "1996년에 말기 암 환자 두 분을 염한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부자였고 한 분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자는 인상을 쓰고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한 분은 표정이 맑았습니다. 알고 보니 돌아가신 뒤에 유족이 좋은 말만 하고 염불도 들려 드렸대요... 2017. 12. 25.
미련 미 련 이렇게 앉아 있다가 문득, 정리된 게 아무것도 없고 정작 무얼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조차 없는 삶이었지만, 지금 떠나야 한다면 기꺼이 그 사자(使者)를 따라나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생각나는 건, 내 것으로 되어 있는 물건들은 얼마 되지 않으니까 누군가.. 2017. 12. 13.
이슬방울에 햇살이 지나는 순간 #1 여직원 두엇이 앉아 있는 강당 출입구 안내 데스크를 지나자 길을 안내하는 학생이 단정하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은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생각도 없이) 관례에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안내해주지 않아도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복도를 지나자 잘 차려입어서 더욱 아름다운 L위원장이 꽃다발과 무슨 두루마리 같은 걸 가지고 분주히 나오고 있었다. 나를 맞이하려고 그렇게 나오는 건 보나 마나이고 내가 알은체 했는데도 '저렇게 허접한 차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지나쳐 가고 있었다. #2 이동하라는 발령을 받고 나서 그동안 근무한 곳의 주변을 살펴보며 그곳 경치가 아름답다는 걸 발견한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도 한 풍경에 감탄하며 나중에 정선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멋진 사진이 될 듯한 곳들을.. 2017. 12. 10.
'일상(日常)' '일상(日常)' (…)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손을 담그고 소다 비누로 씻어내는 통에 난생 처음 동상에 걸리기도 했다. 개인이 구입해야 하는 구두는 지독히도 발가락을 죄었다. 모든 유니폼이 그렇지만 교육생 유니폼은 개인의 정체성을 잠식했으며, 치마 주름을 다리고.. 2017. 12. 7.
S사무관 이광복 "노을" 1 일주일에 두 번쯤 경춘선 열차를 탑니다. 하행선 좌석은 가능하다면 6D, 짝수 창 측은 모자 같은 가벼운 물건을 걸어둘 수도 있고 밖을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고 밖을 내다볼 수도 있습니다.2 간간히 신문 인사란에서 한두 번 그 이름을 본 듯도 하지만, 실제로 만나기로는 이십여 년만인 S 사무관은 5B에 앉아 있었습니다. 맞은편 한 줄 앞 통로 쪽이므로 그의 오른쪽 뒷모습을 마음 놓고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대개 1년 간이지만 1년을 함께하면 그 얼굴이나 이름, 혹은 무슨 이미지 같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엇이 있기 마련인데 '아이들(?)'은 꼭 "저 기억하시겠어요?" 어쩌고 하며 미심쩍어하거나 호들갑을 떱니다. 내가 바보이기나 노망이라도 났다고 소.. 2017. 11. 30.
눈 온 날 아침 마침내 2017년의 눈까지 내렸다. 첫새벽에 내려서 눈이 내린 것도 모르고 있다가 날이 다 밝은 뒤 창문 너머 눈 풍경을 보았고 늦잠을 잔 것이 아닌데도 무안한 느낌이었다. 너무 멀어진 날들의 겨울방학과 방학책들이 생각났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본 방학책이었는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받은 방학책이었는지, 이젠 그것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눈이 내려 저렇게 쌓였다. 그새 눈이 내려 저렇게 쌓이다니……. 이렇게 내린 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낸 나는 눈이 내렸다고 이러고 있지만 눈 같은 건 내려도 그만 내리지 않아도 그만인 채 지내고 있을까? 2017. 11. 25.
철학, 철학자 철학, 철학자 충돌한 차들이 죄다 잿빛으로 보였다. 묘하다. 철학자들이 이전의 개념과 이론을 해체하는 방식을 난 좋아한다. 그 해체 작업은 수세기에 걸쳐 이어져 왔다. 아니, 그런 식이 아니야, 이런 식이지, 라고 철학자들은 말한다. 그렇게 계속 이어져나가는데, 이 이어져나감이 매.. 2017. 11. 10.
'작은어금니'의 인내 아내는 나를 엄살이 심한 인간으로 규정했습니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일단 걱정은 하지만 차도가 보이면 곧 "걸핏하면 엄살을 피운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 핀잔을 듣기가 거북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웬만하면 몰래 약을 먹기도 하고 좀 참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이가 아프고 시리기 시작한 건 지난 추석 때부터였습니다. 당연히 그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상하좌우의 큰어금니 두 개 중 한 개씩은 오래전에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좀 섭섭해서 의사에게 질문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죠?" 그 의사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습니다. "뭘 어떻게 합니까?" ('뭐 이런 양반을 봤나!') 나도 되물었습니다. "임플란트를 한다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의사가 또 되물었습니다. "어금니가 하.. 2017. 10. 31.
또 가네, 속절없는 가을……. 또 가네, 속절없는 가을……. 두어 번밖에 입지 않은 이 옷, 오늘 아침 버스 정류장에선 '안 되겠다. 제대로 입어야겠다' 싶었습니다. 2017.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