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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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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시간 총량보다 중요한 것 (2009년 4월 7일) 공부시간 총량보다 중요한 것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학생들을 붙잡고 있으면 -우리 교육에 대한 앨빈 토플러의 계산대로라면 하루 15시간 동안 ‘사생결단’으로 가르치면- 우리 교육은 성공하는 걸까? 학생들은 빛나는 지식을 갖추게 되고, 우리나라 장래는 그만큼 굳건해질까? 열심히 가르치는 일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그런 학교, 그런 선생님들을 탓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온 나라가 그렇게 돼야 할 것처럼 얘기하거나 그런 사례에서 공교육의 답을 찾으려는 견해는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다. 밤낮없이 많이 가르치는 학교에서 성공사례를 찾으려는 시각으로는 우리 교육의 기본방향을 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간학습까지 챙기는 선생님은 ‘캡틴’」 「내 제자를 학원에 보낼 순 없었어요」 같은 기사가 그런 사례다... 2009. 4. 7.
학교폭력예방 현수막에 관한 낭만주의적 해석 “학교폭력 예방하여 건전한 학교문화 이룩하자” 어느 학교 앞을 지나다가 본 현수막의 표어입니다. 공연히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걸 보고 ‘그래, 이젠 폭력을 하지 않아야지’ 할 아이는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지난겨울엔 이런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러더니 지난 초봄에는 또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마디면 하라면, 좀 미안한 말이지만 차라리 그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불은 세상을 망쳐요!” 지난해 11월초부터 올 2월말까지 4개월간 우리 학교 교문에 내걸었던 불조심 현수막의 표어입니다. 4․4조가 아니어서 어색합니까? 표어는 지난해 2학년 4반이었던 허태훈이의.. 2009. 4. 3.
앤서니 웨스턴 『논증의 기술』 앤서니 웨스턴 『논증의 기술』 이보경 옮김, 필맥 2008(2004) 가령, 누가 “비관론자들은 기회를 어려움으로 여기지만 낙관론자들은 어려움을 기회로 여긴다”(윈스톤 처칠)고 하면,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할 사람들도 있다. 또 “외부의 그 어떤 것도 당신 위에 군림할 수 없다”(랄프 왈도 에머슨)는 격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해석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실감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해도 안 되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외칠 리도 없다. 그럴 듯한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그러면 그는 더 빛나며,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의 말을 .. 2009. 4. 2.
봄 편지(Ⅲ)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요즘은 왠지 짜증날 일이 자꾸 생깁니다. '내가 이러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데, 잘 돌아가는 걸 봤는데,' 그렇게 생각해도 다시 짜증이 나고, 이렇게 좋은 봄인데도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런 제목으로 온 메일을 읽으며 오늘 아침의 짜증을 가라앉혔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작은 이.. 2009. 4. 2.
박흥식 「절정」 절 정  눈부신 슬픔의 구름이 사라지고평원에 쓰러진 검은 소는 뜯겨나가는 제 몸과 사자 무리를 한눈으로 보고 있었다가는 비명마저 천천히 먹히우고거기엔재봉질하던 어머니와일찍 집을 나가 오래 잊혀졌던 누이가 먼지도 없이 내렸다그것은 들판과 구름을 불태우면서.   박흥식 시인의 시집 『아흐레 민박집』(1999, 창비)에서 뽑은 시   “평원에 쓰러진 검은 소”가 하나 있다. “뜯겨나가는 제 몸”과 자신의 살을 물어뜯는 “사자 무리”를 제 눈으로 보고 있다. 검은 소의 “가는 비명마저 천천히” 먹히는 장면을 시인은 (또는 소는) 느린 화면을 보듯 보고 있다. 이 극사실적 서술이 정서 환기를 위한 일체의 수식들을 배제한 채 담박하게 제시되어 있다. 검은 소의 죽음에 이어, 그 죽음 위로, 또는 죽음의 눈꺼풀 안으.. 2009. 4. 1.
김소월 역 「봄」 봄  이 나라 나라는 부서졌는데이 산천 여태 산천은 남아 있더냐봄은 왔다 하건만풀과 나무에 뿐이어 오! 서럽다 이를 두고 봄이냐치워라 꽃잎에도 눈물뿐 흩으며새 무리는 지저귀며 울지만쉬어라 두근거리는 가슴아 못 보느냐 벌겋게 솟구치는 봉숫불이끝끝내 그 무엇을 태우려 함이리오그리워라 내 집은하늘 밖에 있나니 애달프다 긁어 쥐어뜯어서다시금 짧아졌다고다만 이 희끗희끗한 머리칼뿐이제는 빗질할 것도 없구나  김소월, 「봄」(『조선문단』, 1926년 3월호)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城春草木深 성춘초목심感時花濺淚 감시화천루恨別鳥驚心 한별조경심烽火連三月 봉화연삼월家書抵萬金 가서저만금白頭搔更短 백두소경단渾浴不勝簪 혼욕부승잠  ‘두시언해본’은 생략(현대문학 2월호, 199쪽에 있음.)      25세의 청년 시인이 80년 .. 2009. 3. 31.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Ⅱ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에 연재 중인 이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4월호(연재 제4회)에는 지난 번에 소개한 부분에 나오는 그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라는, 역자가 임의로 붙인 작은 제목의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음은 그 중의 일부입니다. 어머니는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충실하게 읽는 낭독자는 못 되었지만, 무엇인가 진정한 감정의 어조가 느껴진다 싶은 작품의 경우에는, 그 해석이 경건하고 소박하며 그 목소리가 아름답고 부드럽다는 점에서 역시 훌륭한 낭독자였다. 실생활에 있어서도,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예술작품이 아니고 사람인 경우, 그가 전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라면, 당신의 목소리나 태도나 말투에서 그.. 2009. 3. 31.
봄 편지(Ⅱ) 가벼웠고, 들떴기 때문일까요, 봄이 왔다고? 눈이 내립니다. 우산을 받치고 오는 아이들이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저들은 영원히 예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천사백 명이 제 손자․손녀인 것 같은 이 느낌은 나의 자산이고 내 나름대로는 지난했던 삶에 대한 보상이고 위로일 것입니다. 저 아이들은 이런 나를 알고 있을까요? 저 아이들이 떠들었다고 선생님께 혼이 나는 것조차 나는 싫습니다. 운동장 건너편 나뭇가지에도 눈이 붙어 벚꽃이 만발한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잠깐은 벚꽃이 핀 줄 알았습니다. 그저께는 강릉 초당동에 있는 강원도교육연수원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관령에서 눈 내린 겨울 산을 그린 산수화 속의 그 늠름한 산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봄인 줄 알았더니…….’ 진달래 대신 눈 쌓인 산의 모습을.. 2009. 3. 26.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김화영 옮김. 프랑수아즈가 내게 와서 쪽지는 곧 전달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인생 수업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스완 역시 그러한 헛기쁨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어떤 무도회나 특별한 야회나 혹은 연극의 개막공연 같은 데 참석하기 위하여 들어가 있는 저택이나 극장 바깥에서 우리가 그 여인과 연락할 수 있는 기회를 절망적인 기분으로 엿보며 배회하고 있을 때, 그 여인을 이제 곧 만나기로 되어 있는 그녀의 친구나 친지가 그 사정을 알아차리고 친절을 베푸는 가운데 맛보게 해주는 헛기쁨을 말한다. 그 사람은 우리를 알아보고 허물없이 다가와서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하여 이쪽에서 그의 .. 2009. 3. 21.
어느 독자 Ⅱ - 지금 교실에 계신 선생님께 - 시업식입니다. 아울러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인사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운동장에는 작은 떨림이 있습니다. 짐짓 무표정하게 새로 만난 아이들 곁을 지나쳤습니다.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는데?" 그 또래 평균치보다 약간 작은 녀석이 아예 내놓고 이야기합니다. 못들은 체하고 지나칩니다. '만만치 않은데. 저 아이와는 올 일 년 특별한 만남이 되겠는 걸.' 아이들은 새로 오신 선생님들의 인사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담임이 된 저를 탐색하느라 흘끔거리는데 시간을 소비합니다(누가 이렇게 쳐다봐 주겠습니까). 더러는 만족하는 것 같기도 하고(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애써 무관해하는 것 같은 표정도 엿보입니다(이미 정해진 담임,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4학년쯤 되면 알 법도 하겠지요). 추운데.. 2009. 3. 19.
봄 편지(Ⅰ)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또한 그 침묵으로부터 겨울이 그리고 여름과 가을이 온다. 봄의 어느 아침, 꽃들을 가득 달고 벚나무가 서 있다. 그 하얀 꽃들은 그 가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침묵의 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그 꽃들은 침묵을 따라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그래서 하얀빛이 되었다. 새들이 그 나무에서 노래했다. 마치 침묵이 그 마지막 남은 소리들을 흔들어 떨쳐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 침묵의 음(音)들을 쪼아 올리는 것이 새들의 노래인 것 같았다. 나무의 푸른빛 또한 돌연히 나타난다. 한 나무가 다른 한 나무 곁에 푸른빛으로 서 있는 모습은 그 푸른빛이 침묵하면서 한 나무에게서 다른 한 나무에게로 옮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대화할 때 .. 2009. 3. 18.
서남표 총장과 오바마 대통령 (20090317) 서남표 총장과 오바마 대통령 “논술 중심으로 가르쳐야 할지, 면접 중심으로 해야 할지 막막하다” “대학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제대로 치러낼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객관적 기준도 없이 선발하겠다는 입학사정관제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승복할지 모르겠다”……. 시험점수가 아니라 인성과 창의성, 잠재력 등을 평가해 신입생을 뽑겠다는 ‘입학사정관 선발’에 대해 학생․학부모, 교사들의 관심과 의구심이 첨예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입학전형에 관한 한 교사와 학부모들의 동의가 필요한 초라한 입장이 돼버렸다. 당연히 대학들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키는 대로 해왔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도화선은 서남표 KAIST 총장이 “私교육은 死교육” “고교 성적은 아예 안 보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잇단 발언으.. 2009.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