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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봄 편지(Ⅰ)

by 답설재 2009. 3. 18.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또한 그 침묵으로부터 겨울이 그리고 여름과 가을이 온다. 봄의 어느 아침, 꽃들을 가득 달고 벚나무가 서 있다. 그 하얀 꽃들은 그 가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침묵의 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그 꽃들은 침묵을 따라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그래서 하얀빛이 되었다. 새들이 그 나무에서 노래했다. 마치 침묵이 그 마지막 남은 소리들을 흔들어 떨쳐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 침묵의 음(音)들을 쪼아 올리는 것이 새들의 노래인 것 같았다. 나무의 푸른빛 또한 돌연히 나타난다. 한 나무가 다른 한 나무 곁에 푸른빛으로 서 있는 모습은 그 푸른빛이 침묵하면서 한 나무에게서 다른 한 나무에게로 옮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대화할 때 말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한 사람에게로 전해지듯이. 그렇게 돌연히 봄은 왔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먼 곳을 응시한다. 말없이 봄을 가져다 둔 뒤에 사라져 버린 그 사람이 아직도 거기에 보이는 듯이 봄에는 사람들의 눈은 먼 곳을 응시한다. 봄의 사물들은 몹시도 연하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내며 시간의 단단한 벽을 부수고 나올 필요가 없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봄의 사물들은 시간의 갈라진 틈으로 스며 나와 돌연히 거기에 나타난 것이다. 가장 먼저 그 시간의 틈으로 빠져나온 것은 광장의 아이들이다. 공중에는 공, 땅바닥에는 유리구슬들과 함께 꽃보다도 아이들이 먼저 나타났다. 돌연히, 아이들은 거기에 있었다. 자기들의 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봄과 함께 시간의 틈에서 빠져나온 듯, 맨 먼저 도착한 그 아이들은 하늘 높이 공을 던지고 커다랗게 소리친다. 마치 뒤따라오는 봄의 사물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려는 듯이. 봄의 모든 그 소리들 뒤편에는 시간의 침묵이 있다. 그 침묵은 하나의 벽이다. 아이들의 말은 그 벽에 맞아 튕겨 나온다. 마치 공이 집 벽에 맞아 튕겨 나오듯이. 나무의 꽃들은 아주 가볍게 만들어져서 마치 침묵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침묵 위에 가만히 내려앉으려고 하는 것 같다. 옮아가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침묵에 실려 다음 봄으로 가기 위해서. 마치 새들이 더 멀리 실려가기 위해서 배 위에 내려앉듯이.

 

요전에 소개한『침묵의 세계』(막스 피카르트, 최승자 옮김, 까치, 1999) 중「시간과 침묵」에서 인용한 글입니다(111~113).

봄은, 말하자면 달력 같은 것으로 표현되는 세월과 시간의 흐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제게는 위안입니다. 더구나 ‘침묵’으로부터 온다? 그것이 또한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릅니다. ‘침묵’은 제게 점점 더 무겁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으며, 곧 제 일상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때가 그립군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어느 봄날 오전, 창밖을 내다보며 T.S. 엘리엍의「황무지(荒蕪地)」를 소개했습니다. 그 멋쟁이 선생님은, 선생님들께서 숙직하시는 방에 들어가서 담배를 꼬나물고 정신없이 바둑을 두는 저와 제 친구를 발견하고 교무실로 끌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그런 짓을 하다가 붙들려왔다는 걸 발설(發說)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3학년 어느 가을날, “너도 곧 졸업이구나.” 하시더니 읍내 선술집에 데리고 가서 막걸리와 추어탕을 사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선생님의 창밖은 언제나 봄입니다.

“4월은 잔인한 달, 불모(不毛)의 땅에서 라일락은 피어나고, …….”

너희들이 뭘 알겠냐는 듯 잔잔하던 그 미소도 그립습니다. 하기야 사람들은 봄만 되면 엘리엍(T.S.Eliot)을 이야기하지만, “4월은 잔인한 달” 거기까지입니다. 그 일곱 자에 엘리엍이 말하고자 한 바가 다 들어있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외워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구나! 4월은 잔인한 달…….’

‘참 희한한 시인’이라는 생각을 넘어 ‘그렇구나!’ 싶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지도 한참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인식이 무슨 위안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쓰라리기만 할 뿐이었는데, 이제 피카르트가 다가온 것입니다.

“봄의 어느 아침, 꽃들을 가득 달고 벚나무가 서 있다. 그 하얀 꽃들은 그 가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침묵의 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그 꽃들은 침묵을 따라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그래서 하얀빛이 되었다.”(피카르트)

 

아직은 엘리엍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4월은 잔인한 달, 불모의 땅에서 라일락은 피어나고,’ 그다음은 뭐냐고 물으시면 난처합니다. 1970년대의 어느 일요일 오전,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한 세계문학전집에서 전문을 읽은 적은 있지만 삶의 한 고비를 넘으며 ‘책까지 버리는 시기’에 그 책들도 포함시켰습니다. 후회하면 뭐 합니까. <지리산약초마을>이란 웹문서에서 원문을 옮깁니다. 해석이 참 어렵다는 시입니다. 자세히 보면 "4월은 잔인한 달, 불모의 땅에서 라일락은 피어나고,"도 제대로 번역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THE BURIAL OF THE DEAD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Memory and desire, stirringDull roots with spring rain.Winter kept us warm, covering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Summer surprised us, coming over the StarnbergerseeWith a shower of rain; we stopped in the colonnade, And went on in sunlight, into the Hofgarten, And drank coffee, and talked for an hour.Bin gar keine Russin, stamm' aus Litauen, echt deutsch.And when we were children, staying at the archduke's, My cousin's, he took me out on a sled, And I was frightened. He said, Marie, Marie, hold on tight. And down we went.In the mountains, there you feel free.I read, much of the night, and go south in the winter.
What are the roots that clutch, what branches growOut of this stony rubbish? Son of man, You cannot say, or guess, for you know onlyA heap of broken images, where the sun beats, And the dead tree gives no shelter, the cricket no relief, And the dry stone no sound of water. onlyThere is shadow under this red rock,(Come in under the shadow of this red rock), And I will show you something different from eitherYour shadow at morning striding behind youOr your shadow at evening rising to meet you;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Frisch weht der WindDer Heimat zu.Mein Irisch Kind, Wo weilest du?'You gave me hyacinths first a year ago;'They called me the hyacinth girl.'? Yet when we came back, late, from the Hyacinth garden, Your arms full, and your hair wet, I could notSpeak, and my eyes failed, I was neitherLiving nor dead, and I knew nothing, Looking into the heart of light, the silence.Od' und leer das Meer.
Madame Sosostris, famous clairvoyante, Had a bad cold, neverthelessIs known to be the wisest woman in Europe, With a wicked pack of cards. Here, said she, Is your card, the drowned Phoenician Sailor, (Those are pearls that were his eyes. Look!) Here is Belladonna, the Lady of the Rocks, The lady of situations.Here is the man with three staves, and here the Wheel, And here is the one-eyed merchant, and this card, Which is blank, is something he carries on his back, Which I am forbidden to see. I do not findThe Hanged Man. Fear death by water.I see crowds of people, walking round in a ring.Thank you. If you see dear Mrs. Equitone, Tell her I bring the horoscope myself:One must be so careful these days.
Unreal City, Under the brown fog of a winter dawn, A crowd flowed over London Bridge, so many, I had not thought death had undone so many.Sighs, short and infrequent, were exhaled, And each man fixed his eyes before his feet.Flowed up the hill and down King William Street, To where Saint Mary Woolnoth kept the hoursWith a dead sound on the final stroke of nine.There I saw one I knew, and stopped him, crying 'Stetson!'You who were with me in the ships at Mylae!'That corpse you planted last year in your garden, 'Has it begun to sprout? Will it bloom this year?'Or has the sudden frost disturbed its bed?'Oh keep the Dog far hence, that's friend to men, 'Or with his nails he'll dig it up again!'You! hypocrite lecteur!? mon semblable,? mon fr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