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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우리 아파트 홍중이

by 답설재 2009. 3. 15.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내애가 제 친구와 헤어지면서 고래고래 떠드는 소리가 지하 2층까지 내려옵니다. 5학년짜리 홍중입니다. 우리 동(棟)에는 그 애 말고는 그럴 애가 없으니까요. 언젠가 “할아버지, 오늘은 더 멋지게 보이세요.” 해서 저를 우쭐하게 했던 그 아입니다.1)

로비 층에서 홍중이가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인사에 이어 숨가쁘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저 8월에 미국 간다는 얘기 들으셨어요?”

“응? 뭐라고? 미국이라니! 얼마 동안?”

빅뉴스를 들은 척해주었습니다.

“3주간요.” 그러더니 벌써 섭섭해진다는 표정으로 덧붙였습니다. “……그동안 할아버지를 못 뵐 것 같아요.” (별 걱정이야, 내 참...)

“그렇겠네? 누구하고 가?”

“영어학원 원장님요(그 애는 내가 어느 학교 ‘교장’인 줄도 모릅니다. 그게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책읽기에서 제가 1등을 했거든요. 겨울방학 때 부탁했었잖아요.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소문이 나지 않도록 해달라고요.”

“그랬었지. 와-, 대단하구나, 홍중이.”

그쯤에서 엘리베이터가 섰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내렸습니다.

학교 교장인 나는 괜히 조급하고 초조했습니다. ‘학원은 그렇게 하고 있구나.’ ‘우리는 아이들에게 뭘 해주고 있나, 살아남기 위해.’

 

학교는 죽지 않을까요, 영원히? 서당은 다 죽었잖습니까? 서당이 죽었을 때 훈장님들은 더러 학교로 전근을 왔습니까?

학교가 죽고 사는 건 교장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걱정해야 합니까? 그는 장관을 언제까지 합니까? 그 다음 장관이 다 책임집니까?

누가 걱정할 일인지 따질 필요 없고, 지금은 덮어두고 지내도 괜찮겠습니까? 곧 퇴임할 사람이 뭘 그러느냐는 뜻인가요?

그러면, 덮어두고 지내도 괜찮은데 대해서라도 책임 좀 져주시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사람으로서 미안한 요청을 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아니라면 그가 누구든 어디서 책임질 사람이 얼른 나서야 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퇴임을 하더라도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미안합니다.


1) <내가 본 세상>의「참 별종인 아이들」(2008.11.13) 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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