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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서남표 총장과 오바마 대통령 (20090317)

by 답설재 2009. 3. 17.

 

 

 

서남표 총장과 오바마 대통령

 

 

 

  “논술 중심으로 가르쳐야 할지, 면접 중심으로 해야 할지 막막하다” “대학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제대로 치러낼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객관적 기준도 없이 선발하겠다는 입학사정관제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승복할지 모르겠다”…….

 

  시험점수가 아니라 인성과 창의성, 잠재력 등을 평가해 신입생을 뽑겠다는 ‘입학사정관 선발’에 대해 학생․학부모, 교사들의 관심과 의구심이 첨예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입학전형에 관한 한 교사와 학부모들의 동의가 필요한 초라한 입장이 돼버렸다. 당연히 대학들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키는 대로 해왔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도화선은 서남표 KAIST 총장이 “私교육은 死교육” “고교 성적은 아예 안 보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잇단 발언으로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일이었다. MIT 교수 출신인 그는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잠재력 있는 인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보석 같은 인재를 발굴해 가르치겠다”며 당장 일반고에서 150명을 무시험으로 선발하겠다고 했다.

 

  수능시험 아니면 안중에 없던 대학들이 며칠 만에 선뜻 호응하고 나섰다. 이른바 ‘서남표 효과’가 나타난 것이지만, KAIST의 150명 선발쯤은 가소롭다는 듯 성균관대, 한국외대, 한양대, 고려대 등이 ‘너도나도’ 본격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발표했고, 심지어 홍익대 미대는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싶게 100명을 실기고사 없이 심층면접으로 뽑겠다는 등 올해에만도 40여 대학이 대거 참여할 전망이다.

 

  이처럼 도도한 흐름을 보며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이렇게 쉽고 간단한가. 그렇다면 왜 머뭇거리고 있었는가.’

  또 있다. 입시학원들은 어떤 전략을 짜고 있을까? 이제 문을 닫아야겠다고 체념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새벽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무너뜨리나?’ 혹은 ‘입학사정관제에는 어떤 허점이 있나? 어디를 뚫어야 하나?’ 사교육의 접근방법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걱정거리는 많다. 그동안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입시제도, 뭐든지 누더기를 만들어온 우리의 입시정책 때문이다.

 

  오랜 경험을 쌓은 미국의 입학사정관들은, 자신이 맡은 고교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축적하고 있고, 심지어 우리나라까지 찾아온다. MIT는 수험생 인터뷰 동문 봉사자만도 2500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선 KAIST를 지켜보고 배우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정부지원 같은 눈앞의 이익만 노려 호들갑을 떨다가 입학사정관제조차도 사교육이 끼어들고 이래저래 말썽스러운 ‘누더기’를 만들고는 “이것도 별것 아니다. 우리 실정에는 역시 수능고사가 최고”라는 체념상태가 될까봐 걱정스럽다.

 

  연계되는 걱정거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을 보라!”는 발언이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연간 1개월을 등교하지 않는 셈이라며 “우린 왜 못하느냐?”고 했다. 공부는 무조건 많이 해야 하고 달달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바마의 발언을 보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교육방법에는 아득한 차이가 있다. 읽고 쓰는 것도 못하는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강력한 기초교육만을 미국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우리의 교육방법은 학생들을 병들게 하지만, 창의성과 사고력 신장에 중점을 두는 미국이 그들의 교육방법대로 공부를 더 시킨다면 우리와 미국간의 교육경쟁력은 그만큼 더 벌어지게 될 것은 물어보나마나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명문대의 우리 학생들은 44%가 중도탈락하고 있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의 당면과제는 제도개선 이전에 ‘지식’을 정의하는 일이고, 무엇이 ‘공부’이고 ‘실력’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그건 교육학자들의 몫이다. 앨빈 토플러가 경멸해마지 않는 ‘밤늦게까지 공부시키기’에 혈안이 된 우리 국민들에게는 ‘공부’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교육학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오랫동안 들리지 않고 있다.

 

  논술 중심으로 가르쳐야 할지, 면접 중심으로 해야 할지 막막해 할 필요도 없다. KAIST 총장이 “시험점수가 아니라 인성과 창의성, 잠재력 등”이 가능성이라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