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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58

"서투르고 어설픈 내 인생" 젊었던 시절에는 아내로부터 꾸중이나 원망, 잔소리 같은 걸 듣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내는 내 위세에 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에 넣어놓고 지냈을 것입니다. ​ 살아간다는 건 내게는 하나씩 둘씩 어설픈 일들을 벌이고 쌓아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내가 그걸 때맞추어 지적했다면 나는 수없는 질책을 받았어야 마땅합니다. ​ 아내는 이젠 다른 도리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고, 이젠 내 허물을 보아 넘기지 않게 되었고, 그때마다 지난날들의 허물까지 다 들추어버립니다. 아무래도 헤어지자고 하겠구나 싶은데 그런 말은 꺼내지 않는 걸 나는 신기하고 고맙게 여깁니다. 그러면서 '나는 언제부터 이런 질책을 듣지 않는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 한탄합니다. 공자님 말씀 "七十而從.. 2022. 9. 1.
어처구니없이 가버린 여름 입추가 되어도 더위는 여전했지 않습니까? '이러려면 입추는 왜 있는 거지?' 그런데 처서가 되자 거짓말처럼 더위가 물러가버렸고 이불을 덮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이틀 만에 얼른 겨울이불로 바꿨습니다. '이러다가 변을 당하겠네?' 아침 기온이 당장 13도까지 내려가버렸습니다. 거기에 추절추절 비가 내립니다. 이 비가 그치면 결국은 기온이 더 떨어질 것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엊그제는 여름이었는데 금방 가을을 지나 겨울이면, 계절의 변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누가 이 꼴을 만들어놓았는지, 사람들이 하도 잘난 척하니까 하는 말이지만 이런 현상을 바로잡아줄 사람이 나타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무더위를 괜히 원망했다 싶고, 사람 마음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뒤집어질 수.. 2022. 8. 31.
"겨울 추위가 가득한 밤" 거기도 비가 내립니까? 가을이 여름의 뒤를 자꾸 밀어내는 듯합니다. 18일이니까 열흘쯤 전이었고 엄청 더웠습니다. 습도가 높아서 보일러를 잠깐만 가동했는데 이번에는 습도도 높고 후끈거려서 '체감습도'가 더욱더 높아졌으므로 비가 내리거나 말거나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습니다. ​ 별 할 일도 없고 해서 걸핏하면 스마트폰에서 날씨나 확인합니다. 내가 날씨를 자주 확인한다고 해서 무슨 수가 나는 건 아니고 그렇게 확인하나마나 날씨는 정해진대로 '업데이트'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스마트폰에서 날씨를 확인하는 건 나에게는 전혀 쓸데가 없는 짓인데도 나는 가능한 한 자주 확인하며 지냅니다. ​ 그날 오후 4시쯤 스마트폰을 들여다봤을 때는 기온 30도, 체감 온도 32도 표시 아래 이렇게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 겨울 .. 2022. 8. 29.
잠을 자지 않은 사나이 라디오 쇼 진행자 피터 트립은 호기심 많은 디제이였습니다. 1959년, 서른두 살의 트립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싶은 욕심으로 8일 동안 잠을 자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이트 스쿨》이라는 책에는 그의 기행이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66~67). (전략) 며칠 더 잠을 못 잔 트립은 몽롱한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스튜디오에 생쥐들이 돌아다니네, 신발에는 거미가 가득하고, 책상은 불에 타고 있어"라며 망상에 시달렸습니다. 그즈음 한 의사가 와서 그를 검진했죠. 그런데 트립은 이 의사가 실제로는 자신을 땅에 묻으러 온 장의사라고 확신한 나머지, 반나체인 채로 스튜디오 룸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습니다. 자청한 잠 안 자기 고생이 끝나갈 무렵, 기진맥진한 이 라디오 쇼 진행자는 자신.. 2022. 7. 19.
인간의 역할 나는 자주 미래의 모습들을 가지고 장난을 쳤고, 내게 배정되어 있을 역할들, 시인이나 어쩌면 예언자, 아니면 화가 등의 역할들을 꿈꾸었다.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문학작품을 쓰거나 설교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도 그런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곁다리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것뿐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안인희 옮김, 문학동네 2013, 154) 나 자신에게로?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누구지? 나는 언제 인간의 역할을 하게 되지? 2022. 7. 17.
아내가 나를 부르는 말 내 아내는 나를 수십 년간 "봐요!"라고 불렀다. 그게 못마땅할 때도 있었나? 그건 아니었다. 무덤덤하거나 고맙게 여겼다. 그렇게 부르는 마음을 헤아리곤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였더라? "할아버지!" 더러 그렇게 부르더니 이제 그렇게 확정되었다. 그건 이렇게 둘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곁에 있을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 둘이 있을 때도 "할아버지!"이고 자다가 잠꼬대를 해서 깨워줄 때도 "할아버지!"다. 나는 "여보!"하고 부르는데도 내내 "봐요!" 하다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바라보고 있다. 여건이 세상에서 가장 좋지 못한 집에 시집온 데다가 내가 못할 짓도 많이 하고 해서 고생이란 고생은 도맡아놓고 했는데도 시종일관 "봐요!" 하다가 마침내 "할아버지!"하고 부르는 걸 인간이 어.. 2022. 7. 7.
나의 독자 "따뜻한" 따뜻한 2022.07.04 21:06 얼마 만에 온 걸까요. 십 년도 넘었나 봅니다. 그 시절의 제 목소리는 제법 날이 서 있고, 결기도 느껴집니다. 젊은 제가 나이 든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 힘으로 오늘 1학기 말 교육과정 평가회 3회 차 중에서 첫 날을 이끌었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학교교육과정에 대한 그 시절 그 생각을 지금까지 이어가는 셈입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생각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제 생각이 논리와 명분이 제대로 담긴 글과 실천으로 펼쳐진 이곳이 참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존경스럽고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분발했고,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 말이 남아있는 이 블로그에 오래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선생님의 최근 글을 읽습니다. 쓸쓸합니다. 거.. 2022. 7. 5.
답설재(踏雪齋)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웠던 날들을 떠올렸습니다. 'Spiegel im Spiegel' 'Für Anna Maria'를 또 들었습니다. 슈베르트도 들었고, 나는 많이 변하지 않았고, 옛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성희와 준엽에게 고마워했습니다. 2020년 겨울까지 나는 많이 달라지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거울 속의 거울' 음악을 들으시려면 ☞ 위 본문에서 Spiegel im Spiegel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2022. 7. 2.
고마운 리뷰 이름 모르는 어느 선생님께 선생님!고맙습니다.제 책에 대한 리뷰가 "예스24"에 실렸다는 사실이과분할 뿐만 아니라선생님의 말씀은 제게는 이 책에 대한 그 어떤 표현보다 신선하고 감동적입니다.초임 때 저를 만났다는 말씀만 하셔서 어느 분인지도 모르지만두고두고 감사드리겠습니다.오늘, 이 시간에도 아이들과 함께하실 선생님!건강하시고 편안하시기 바랍니다.선생님과 함께하고 있는 그 아이들은행복할 것 같습니다.아이들과 함께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022. 6. 22.
성희의 생각, 성희 생각 (2) "아, 너무 아름다워요~" 성희 부부는 저 언덕에 수레국화와 함께 쑥부쟁이 씨앗도 뿌렸습니다. 봄에 새싹이 돋을 때 노인은 난감했습니다. 야생화와 잡초를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수레국화는 한꺼번에 화르르 피어나서 '이건 꽃이겠구나' 했는데, '쑥부쟁이'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이름 첫 자가 '쑥'이어서 '아마도 쑥 비슷한 종류겠지?' 짐작만 했습니다. 지난해엔 저 언덕의 잡초를 뽑으며 쑥 비슷한 것이 있는가 잘 살펴보았습니다. 쑥은 흔했지만 쑥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쑥은 쑥떡의 재료가 되니까 그냥 둘까 했는데 "그냥 두면 결국 쑥대밭이 된다"고 강조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노인은 말만 들어도 '쑥대밭'이 되는 꼴은 보기 싫었습니다. 쑥대밭이 되지 않도록 쑥은 잘 뽑고 개망초도 잘 아니까 개망초다 싶은 것도 고개를 .. 2022. 6. 20.
돈키호테처럼 걸어가는... 2022. 6. 17.
선생님께 (류병숙 시인의 독후감) "상자에 몸 넣기가 아닌 시를 쓰겠다"고 한(동시집 《모퉁이가 펴 주었다》 2021), 그런 동시를 쓰고 있는 류병숙 작가가 '부끄러운 독후감'이라며 메일을 보내주었습니다.독후감도 독후감이지만 메일에 "이런 교육서적은 우리 주변에 흔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해서 '그런가? 이건 대단한 칭찬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교육서적! 이게 '교육서적'이 되었구나!- 흔치 않다고?- 학부모와 선생님들로부터 환영 받을 것 같다고?그럴 리가 없다고 해도 나는 좋았습니다.   선생님께   파란편지님, 아니 선배님, 이제야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두서없이 그냥 소감을 써볼까 합니다. 잘 쓰려고 하면 어려워지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상큼한 책을 읽었다고 할까요. 빙그레 웃다가, 찡그리다가, 끄덕.. 2022.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