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53 잘도 오는 가을 뭘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제때 오지 않고 난데없이 나타나곤 했다. 기온이 아직은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물들여버렸다. 결국 올해도 이렇게 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면 누가 어디에 대고 어떻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항의를 할 수 있겠는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따르기가 싫다. 2022. 9. 18.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Op.73 '황제' (L.v.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가을이 온 이후 주말에는 꼭 한 번씩 듣고 있어. 언제까지? 글쎄? 베토벤은 죽은 지 오래인데 딴생각을 못하게 해. 그의 사진을 떠올리면 더욱... 당연히 일도 못해. 딴생각을 못하고 일도 못하니까 아예 듣지 않으면 되는데 자꾸 듣네. 멍하게 앉아 있는 것도 이젠 괜찮겠지? 괜찮을까? 하기야 일부러 멍하려면 그것도 꽤나 힘들긴 하지? 이러다가 겨울이 오겠지? 좋은 가을밤인데... iframe width="1085" height="610" src="https://www.youtube.com/embed/LYUrPqaG11Y" title="21세 조성진│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Op.73 '황제' (L.v.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Pf.Seongjin Ch.. 2022. 9. 17. 맛있는 빵 사 갖고 가기 빵가게를 가려면 이 길로 내려오면 됩니다. 도서관 옆이니까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거기가 빵집입니다. 아주 작아서 세 사람만 들어가도, 그중에 좀 야단스러운 사람이 끼어 있으면 빵 구경하고 고르고 계산하고 하기가 순조롭지 못합니다. 그럼 슬그머니 나왔다가 조용할 때 다시 들어갑니다. 그렇게 작은 빵집은 언젠가 방송에서 전 세계적으로 제일 좋은 빵을 만드는 집인양 소개해서 우면동까지 찾아가 본, 빵맛이 너무나 형편없었던(그냥 밀가루 뭉친 듯한) 그 가게 말고는 처음입니다. 이 집은 고소한 빵만 만듭니다. 게다가 '계량제'와 '화학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발효종'(이게 뭐죠? 아마도 좋은 것)을 써서 통밀, 밀, 보리의 풍미와 식감을 살리고,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만든다는 표지판을 보면(언젠.. 2022. 9. 16. 영혼 ② 저 소 눈빛 좀 봐 내가 축사 앞에 서면 쳐다보기도 하고 설설 다가오기도 합니다. 무슨 말을 할 듯한 표정입니다. - 왜 들여다봐? - 심심한 것 같아서... - 왜 그렇게 생각해? - 거기 축사 안에서만 평생을 지내다가 가니까. (도살장이란 단어를 꺼내는 건 어렵다. 저들도 안다.) - 너희 인간들은 달라? 갇혀 살지 않아? - 글쎄, 우리는 멀리 여행도 가고... 그러잖아. 달나라에도 가잖아. - 그게 대단해? 속담에도 있잖아. 오십 보 백 보... - 오십 보 백 보... 그야 그렇지. 그렇다면 할 말이 없네. 나는 저 어미소와 아기 소(송아지)도 바라봅니다. 어쩌면 저리도 다정할까요? 저 앉음새의 사랑 속에 온갖 사연이 다 들어 있겠지요? 나는 축사 앞을 지날 때마다 들여다봅니다. 자꾸 나 자신을 보는 듯합니다. 2022. 9. 11. '엉망진창 학예회' 안녕하세요, 선생님!금요일 저녁에 언니 별서에서 보내고함께 어머니 산소에 다녀왔습니다.그 사이 선생님 책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이 와 있었습니다.반가움에 맨 앞의 '엉망진창 학예회'를 읽었습니다.그리고 덮었습니다.여운이 길었으니까요.첫 이야기에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색으로 보면 계룡산에서 본 무성한 녹색일 것입니다.인연이 닿아 뵙게 되면이 이야기만으로도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선생님의 교육 철학에 동의합니다."당신 말씀이 옳습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라는 ○○○○ 드림. 2022. 9. 9. 영혼 ① 빵집 앞 강아지 빵집 앞에서 저 강아지가 네 박자로 짖고 있었습니다. "왈왈왈왈 ○ ○ ○ ○ 왈왈왈왈 ○ ○ ○ ○ 왈왈왈왈 ○ ○ ○ ○ .............................." 나는 빵집을 나오자마자 바로 저 모습을 보았는데 강아지는 빵집을 향해 똑바로 서서 네 박자씩 줄기차게 짖어대고 있었습니다. 여기선 보이지 않지만 유모차 안에는 아기가 있었습니다. - 이 강아지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짖고 있을까? - 자신이 주인보다 윗길이라고 여기고 강압적으로 명령하고 있는 걸까?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당장 나오지 않고!" - 아니면? 애원조로? '제발 빨리 좀 나오세요. 부탁이에요~ 초조해 죽겠어요. ㅜㅜ'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짖는 모습이나 그 목청으로 보면 아무래도 "들어간 .. 2022. 9. 8. 조것들을 죽여버리려는 것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복도 많지, 일곱 명이나 됩니다. 아, 여기 나무 아래에 뒤쳐진 아이 한 명을 데리고 가는 선생님도 보입니다. 두 분이 여덟 명을 보살피는 것 같습니다. 고물고물 움직이는 조것들에게 발길질을 해서 신문방송에 나온 선생님도 있습니다. 낮잠을 자지 않는다고 이불에 싸서 던져버리고 그 위에 무지무지하게 굵다란 그 넓적다리를 올려놓고 밥 먹는 아이 이마를 쥐어박아 넘어뜨리고... 아이가 모를 줄 압니까? 분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두고두고 생각하고 떠올릴 것입니다. '나는 그때 마녀와 지냈다고, 이 세상에는 실제로 마녀들이 있다고, 복수를 하고 싶다고...' 차라리 그렇게 기억하면 다행일 것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라서 자신도 모른 채, 영문도 모른 채 씩.. 2022. 9. 6. 시력視力지키기 1, 2는 그렇다 치고 핵심이라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책 같은 걸 들여다보다가 30분쯤 지나 창밖 좀 내다보면 시력 보호에 좋다, 자주 듣고 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눈을 혹사시켰습니다. 어느 날 동네 운동장에 걸어내려갔다가 시야가 부옇게 흐려 마치 안개가 낀 것 같아서 '뭐지?' '왜 이러지?' 하고 눈을 닦고 바라보고 또 눈을 닦고 바라보고 하다가 '내가, 내 눈이 왜 이렇게 됐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온갖 '외로움'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눈만 있으면 마지막까지 책은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러면 됐다는 것이 내 '서러운 다짐'이었는데 그것마저 허용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암담했습니다. 증상은 간단히 판명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그 백내장이라는 것이고 당장 맹인이 .. 2022. 9. 2. "서투르고 어설픈 내 인생" 젊었던 시절에는 아내로부터 꾸중이나 원망, 잔소리 같은 걸 듣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내는 내 위세에 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에 넣어놓고 지냈을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건 내게는 하나씩 둘씩 어설픈 일들을 벌이고 쌓아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내가 그걸 때맞추어 지적했다면 나는 수없는 질책을 받았어야 마땅합니다. 아내는 이젠 다른 도리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고, 이젠 내 허물을 보아 넘기지 않게 되었고, 그때마다 지난날들의 허물까지 다 들추어버립니다. 아무래도 헤어지자고 하겠구나 싶은데 그런 말은 꺼내지 않는 걸 나는 신기하고 고맙게 여깁니다. 그러면서 '나는 언제부터 이런 질책을 듣지 않는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 한탄합니다. 공자님 말씀 "七十而從.. 2022. 9. 1. 어처구니없이 가버린 여름 입추가 되어도 더위는 여전했지 않습니까? '이러려면 입추는 왜 있는 거지?' 그런데 처서가 되자 거짓말처럼 더위가 물러가버렸고 이불을 덮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이틀 만에 얼른 겨울이불로 바꿨습니다. '이러다가 변을 당하겠네?' 아침 기온이 당장 13도까지 내려가버렸습니다. 거기에 추절추절 비가 내립니다. 이 비가 그치면 결국은 기온이 더 떨어질 것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엊그제는 여름이었는데 금방 가을을 지나 겨울이면, 계절의 변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누가 이 꼴을 만들어놓았는지, 사람들이 하도 잘난 척하니까 하는 말이지만 이런 현상을 바로잡아줄 사람이 나타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무더위를 괜히 원망했다 싶고, 사람 마음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뒤집어질 수.. 2022. 8. 31. "겨울 추위가 가득한 밤" 거기도 비가 내립니까? 가을이 여름의 뒤를 자꾸 밀어내는 듯합니다. 18일이니까 열흘쯤 전이었고 엄청 더웠습니다. 습도가 높아서 보일러를 잠깐만 가동했는데 이번에는 습도도 높고 후끈거려서 '체감습도'가 더욱더 높아졌으므로 비가 내리거나 말거나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습니다. 별 할 일도 없고 해서 걸핏하면 스마트폰에서 날씨나 확인합니다. 내가 날씨를 자주 확인한다고 해서 무슨 수가 나는 건 아니고 그렇게 확인하나마나 날씨는 정해진대로 '업데이트'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스마트폰에서 날씨를 확인하는 건 나에게는 전혀 쓸데가 없는 짓인데도 나는 가능한 한 자주 확인하며 지냅니다. 그날 오후 4시쯤 스마트폰을 들여다봤을 때는 기온 30도, 체감 온도 32도 표시 아래 이렇게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겨울 .. 2022. 8. 29. 잠을 자지 않은 사나이 라디오 쇼 진행자 피터 트립은 호기심 많은 디제이였습니다. 1959년, 서른두 살의 트립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싶은 욕심으로 8일 동안 잠을 자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이트 스쿨》이라는 책에는 그의 기행이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66~67). (전략) 며칠 더 잠을 못 잔 트립은 몽롱한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스튜디오에 생쥐들이 돌아다니네, 신발에는 거미가 가득하고, 책상은 불에 타고 있어"라며 망상에 시달렸습니다. 그즈음 한 의사가 와서 그를 검진했죠. 그런데 트립은 이 의사가 실제로는 자신을 땅에 묻으러 온 장의사라고 확신한 나머지, 반나체인 채로 스튜디오 룸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습니다. 자청한 잠 안 자기 고생이 끝나갈 무렵, 기진맥진한 이 라디오 쇼 진행자는 자신.. 2022. 7. 19.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