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를 가려면 이 길로 내려오면 됩니다. 도서관 옆이니까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거기가 빵집입니다.
아주 작아서 세 사람만 들어가도, 그중에 좀 야단스러운 사람이 끼어 있으면 빵 구경하고 고르고 계산하고 하기가 순조롭지 못합니다. 그럼 슬그머니 나왔다가 조용할 때 다시 들어갑니다. 그렇게 작은 빵집은 언젠가 방송에서 전 세계적으로 제일 좋은 빵을 만드는 집인양 소개해서 우면동까지 찾아가 본, 빵맛이 너무나 형편없었던(그냥 밀가루 뭉친 듯한) 그 가게 말고는 처음입니다.
이 집은 고소한 빵만 만듭니다.
게다가 '계량제'와 '화학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발효종'(이게 뭐죠? 아마도 좋은 것)을 써서 통밀, 밀, 보리의 풍미와 식감을 살리고,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만든다는 표지판을 보면(언젠가 내게 그랬습니다. "이 동네에서 찍히지 않고 살고 싶어서요^^") 빵을 살 때마다 그 주인 부부가 미더워 보였습니다.
번거로워도 일찍 가야 합니다.
8시경부터 빵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남겨놓질 않습니다. 고르고 싶은 빵은 이내 다 팔릴 수도 있습니다.
잘 팔린다고 더 만들지도 않고, 오후 2~3시에는 꼭 문을 닫는데 그때쯤이면 남은 빵이 겨우 두세 개뿐이어서 주인 부부가 먹기에도 부족하게 됩니다.
손님들은 우리 아파트 사람보다 다른 아파트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침에 볼일을 보려고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다 보면 흔히 이름난 빵집이 다 있는 그곳 사람들이 빵 봉지를 들고 내려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빵 봉지를 든 사람들은 그 빵을 빼앗길까 봐 조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그렇게 보이는지 알 수 없지만 석기시대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냥한 짐승을 둘러메고 난데없이 나타나는 도적에게 빼앗길까 봐 두리번거렸을 그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이 먹을 빵이어서일까요?
워낙 맛있는 빵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진짜 누가 채어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느낌일까요?
아무튼 여느 물건을 들고 갈 때와는 판이한 모습이어서 저 빵집을 아시면 한번 눈여겨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심지어 좀 심각한 생각까지 하곤 합니다.
우리의 '문화'라는 것이 사실은 저 석기시대나 청동기 시대와 아주 확 달라진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무엇이 미덕일까요?
남들에게 빵을 빼앗기지 않고 귀가하는 것?
공동체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서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어떤 것을 계획하고 궁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마침내 코로나와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을 때, 아베 수상이 세계 최고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저 일본 사람들이 서로 휴지통을 집으려고 아수라장을 벌이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생각했었습니다. '마침내 원시시대로 돌아가는구나... 쉽게도 망가지는구나.'
엊그제는 미국 대통령이 무슨 약품인가를 개발해서 미국인들이 우선으로 사용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나서 만면에 웃음을 짓자 둘러싼 사람들(백악관 고위층들인가요?)이 박수로 호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다가 개인주의, 자기 중심주의, 민족주의, 폭력주의 같은 것들이 설설 고개를 들어 판을 치는 사회가 되는 건 아닐까요? 기우일까요?
빵 봉지 들고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한 생각으로는 적절치 못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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