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53

눈물 너머 아카시아꽃 # 1 내 형제 중 한 명이 다 없애버렸지만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4학년 담임 ○인○ 선생은 우등상은 자신이 거주하는 그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상 따위는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걸핏하면 매질을 했습니다. 특히 비 오는 날 그 짓을 자주 했는데 자신이 맞을 매를 자신이 준비해오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가느다란 것, 짧은 것을 가져오면 선생이 갖고 있는 매로 때리겠다고 해서 손가락 세 개 정도 굵기는 되어야 만족했습니다. 나는 늘 매 맞을 아이들 중 한 명이 되었는데 내가 뭘 잘못한 것인지 그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선생이 풀지 못하는 산수 문제를 말없이 풀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데 아이들은 .. 2022. 5. 25.
김만곤《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을 읽고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 즐거운 교육을 위해 펼쳐내는 가슴속 이야기 비상 2022.5      쉽고 재미있어서 어제오늘 다 읽었습니다. 53년 전 선생님 그대로였고 치열하게 살아오신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영원한 우리 선생님... (변호사 ○용○)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겼어요. 책장을 넘기며 행복했습니다. (유치원 원장 ○찬○)  와~~~우! 교장선생님의 철학과 소신이 그림으로 그려진 듯했어요! 진의이고 자존이고요!드디어 저의 바람이 이루어졌어요 ㅎㅎ. 그렇지만 1권이 출간됐으니까 2, 3권도 나와야 하실 일을 다 하시는 것이죠.찬찬히 한번 더 읽고 교사로 살아가는 제 여식에게 자랑하고 읽게 하겠습니다. (교육부 서기관 김○○)  "그날 이후 나는 왜 선생님과 같은 분을 학창 시절 스승.. 2022. 5. 19.
다짐 국민학교 다닐 때는 사이렌이 울리면 재빨리 '책보'를 싸서 머리에 이고 책상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괴뢰군 비행기가 날아와서 폭격을 할 경우를 대비하는 훈련이라고 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는 줄도 모른 채 들에서 일만 하고 있을 아버지와 엄마가 걱정스러웠고, 평상시와 하나도 다름없는 두 분을 보면 안심이 되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본래 어리석었지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 수십 년 간 사회정의 구현의 기본을 담당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초임 학교에서의 어느 날, 1교시 후에 '한국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홍보하려고 마을로 나갔습니다. 농촌이 한창 바쁜 시기였습니다. 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좀 나오라고 해서 곧 국민투표를 하게 되는데, 우리에게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 2022. 5. 12.
이곳에 돌아옴 난들 왜 몰랐겠는가 이렇게 가는 길 달 뜨는 저녁 별 지는 새벽 왜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그날들의 즐거움 이어지는 허전함, 외로움 왜 몰랐겠는가 2022. 5. 10.
송화가루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다가 교장 발령을 받아서 나간 학교는 참 조용했습니다. 광화문의 그 번잡함에 길들었던 나에게 그 조용함은 결코 서두르지는 않는 변화의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뭐랄까, 아득하고 아늑한 느낌이었습니다. 가을 아침 교장실에 들어가면 귀뚜라미가 그제도 울고 있었고, 아이들이 공부에 열중하는 아침나절의 고요함을 뻐꾸기 혼자 깨어보려고 목청을 돋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주차장으로 가면 자동차 유리창이 노란 송화가루로 덮여 있었습니다. ○모네는 명절이 되면 송화가루로 다식을 만들었습니다. 꿀로 버무린 그 다식을 입에 넣으면 이렇게 달콤할 수가 있나 싶고 나보다 딱 한 살 적은 ○모의 아들이 부러웠습니다. ○모네 말고는 아무도 송화가루로만 만드는 다식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네.. 2022. 5. 9.
아름다운 오후의 쓸쓸한 장례식 W. G. 제발트의 소설 『토성의 고리』는 그냥 재미 삼아 쓴 소설은 아니었다. 순전히 우수(憂愁)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독후감을 쓰긴 했지만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그 석연치 않음으로 우수의 사례를 옮겨 써 보자 싶었는데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골라놓은 것이 우선 옮겨 쓰기에는 너무 길었다. 어쩔 수 없어서 발췌를 해보았는데, 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버려서 제목도 저렇게 '아름다운 오후의 쓸쓸한 장례식'이라고 아버지 이야기에 따르게 되었다. 1862년 끝여름 무렵 마담 에벨리나 코르제니오프스키는 당시 다섯 살이 채 되지 않은 아들 테오도르 조지프 콘래드를 데리고 포돌리아(지금은 우끄라이나 서부지역으로 당시는 러시아령 폴란드였다)의 작은 도시 치토미르를 떠나 바르샤바로 갔다. 문학활.. 2022. 5. 7.
"꽃길만 걸으세요~" "여러분~ 부자되세요~" 이십 년 전쯤 어느 예쁜 탤런트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외쳤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더러 다 부자가 되라고? 아예 꿈도 꾸지 않은 일이었지만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그 탤런트의 말이 싫다고 할 필요는 없고, 그렇게 하기도 싫고 "가치관의 혼란을 느꼈다"고 대답할 것 같다. 이런 경우도 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맞춤법 검사를 해보니까 "행복한 주말이 되기 바랍니다"라네? 그렇거나 말거나) 그런 인사를 대할 때마다 자신이 없다는 느낌을 갖는다. 자신이 없다는 느낌의 이유를 대라면? "아, 저는 복잡한 인간입니다. 이번 주말은 아무 일 없이 편안한 시간을 가질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평생 .. 2022. 5. 4.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고 나는 작별인사를 하러 왔어요(I have come to say goodbye)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녀의 옷과 마찬가지로 붉고 차양이 넓은, 순례자가 쓰는 모자 비슷한 것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내가 그녀 바로 옆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주 멀리 있는 듯 느껴졌다. 그녀의 멍한 눈길이 나를 관통하여 뒤쪽으로 나아갔다. 제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으니 언제든 원하시면...(I haveleft my address and telephone number, so that if you ever want...) 나는 문장을 완성할 수 없었고,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도 몰랐다. 카타리나 또한 내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언젠가(At one point),라고 운을 떼더니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말.. 2022. 4. 27.
'은퇴 전에 준비해놓을걸…' 은퇴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노후자금' '취미' '체력'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여가는 있는데 돈과 체력이 부족하고 뭘 할지 막연하다는 것이지요. 지난 2014년 연말에 삼성생명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조선일보 2014.12.3). 은퇴자 93명을 대상으로 돈·생활, 일·인간관계, 건강 세 가지에 대해 '무엇을 가장 후회하는가?' 물었더니 노후 여가 자금을 준비하지 않았고, 평생 즐길 취미가 없고, 운동으로 체력 단련을 못했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돈과 생활'에 대해서는 노후 여가 자금 준비를 못한 것 외에도 여행을 못했고,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고, 노후 소득을 위한 설계를 제대로 못한 것을 아쉬워하더라고 했습니다. 또 '일과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취미를 개발하지 못.. 2022. 4. 25.
그리운 제라늄 : '치구의 情' '이쁜준서' 님 블로그 《봄비 온 뒤 풀빛처럼》에는 화초 얘기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라늄 이야기가 등장해서 그 블로그 검색창에 제라늄을 넣어봤더니 스물네 가지쯤 올라와 있었습니다. 단어까지 치면 아마 수백 개가 될 것입니다. '하필 제라늄을 왜?' 제라늄 화분을 '옥상정원'에서 월동시켰는데 지금 아주 고운 꽃이 피었다고 해서 '그게 본래 그런(기특한! 든든한!... 그런) 녀석이었구나' 싶었습니다. # 내가 교사였을 때는 '1인 1화분' 시책이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1인 1화분'? 그 왜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한 학년 올라가면 교실이 바뀌고, 그 교실 환경을 그럴듯하게 조성하면서 창가에는 아이들이 가져온 화분을 올려놓곤 했지 않습니까? 초임의 산촌 학교에서는 1인 1화분을 하지 않았습니다.. 2022. 4. 17.
벚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리던 날 지난 13일 수요일, 겨우 사흘 전이었군요. 벚꽃잎이 휘날렸습니다. 눈 같았습니다. 바람 부는 날 첫눈 같았습니다. 벚꽃은 해마다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이제 놀라지 않아도 될 나이인데도 실없이 매번 놀라곤 합니다. '아, 한 가지 색으로 저렇게 화려할 수 있다니!' 그 꽃잎들이 아침부터 불기 시작한 세찬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져 마구 날아다녔습니다. 벚꽃잎들이 그렇게 하니까, 재활용품 수집 부대 속에 있던 페트병과 비닐봉지들도 튀어나와서 덩달아 날아다니고 함께 데굴데굴 굴러다녔습니다. 집을 나서서 시가지(다운타운)로 내려가는데 저 편안한 그네에는 몇 잎 앉지 않고, 그네가 싫다면 그냥 데크 바닥에 앉아도 좋을 텐데 하필이면 비닐창에 힘들여 매달린 것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도 물 .. 2022. 4. 16.
글을 쓰는 일 나는 심지어 내가 책을 읽을 수 있기도 전에 어떻게 책이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책상에 몸을 숙이고 있는 아버지 등 뒤로 살금살금 들어가 발끝으로 서곤 했는데, 아버지의 지친 머리는 책상 스탠드의 노란 불빛 웅덩이 속에 떠다니고, 그는 천천히 공을 들여, 책상 위에 놓인 두 더미로 나뉜 책들 사이에 만들어진 꾸불꾸불한 계곡 사이로 자기 길을 재촉하며, 앞에 펼쳐진 두터운 학술 서적들로부터 온갖 종류의 자세한 내용을 뽑아서 찢어내, 스탠드 불빛을 향해 붙들고 잘 살펴 분류한 다음, 작은 카드에 내용을 베껴 쓰고, 그다음엔 마치 목걸이를 꿰듯, 퍼즐의 제자리에 각각을 맞춰두고 있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처럼 일했다. 나는 시계 제조상이나 재래식 은세공인처럼 일했다. 왼쪽 눈을 바짝 찌푸린 .. 2022.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