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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글을 쓰는 일

by 답설재 2022. 4. 13.

2022.1.1. 자신의 책을 만들고 싶은 아이가 본 바다

 

 

나는 심지어 내가 책을 읽을 수 있기도 전에 어떻게 책이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책상에 몸을 숙이고 있는 아버지 등 뒤로 살금살금 들어가 발끝으로 서곤 했는데, 아버지의 지친 머리는 책상 스탠드의 노란 불빛 웅덩이 속에 떠다니고, 그는 천천히 공을 들여, 책상 위에 놓인 두 더미로 나뉜 책들 사이에 만들어진 꾸불꾸불한 계곡 사이로 자기 길을 재촉하며, 앞에 펼쳐진 두터운 학술 서적들로부터 온갖 종류의 자세한 내용을 뽑아서 찢어내, 스탠드 불빛을 향해 붙들고 잘 살펴 분류한 다음, 작은 카드에 내용을 베껴 쓰고, 그다음엔 마치 목걸이를 꿰듯, 퍼즐의 제자리에 각각을 맞춰두고 있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처럼 일했다. 나는 시계 제조상이나 재래식 은세공인처럼 일했다. 왼쪽 눈을 바짝 찌푸린 채 가늘어져 있고, 다른 한쪽 눈은 시계 제조상의 확대경에 고정되어 있으며, 손가락 사이엔 미세한 핀셋이 들려 있고, 내 책상 앞엔 카드가 아니라 종잇조각이 놓여 있으며, 그 책상 위에서 나는 여러 가지 단어, 동사 형용사 부사, 그리고 분해된 문장 조각, 표현과 묘사의 분절, 온갖 종류의 시험적인 결합을 기술했다. 이따금 나는 이 입자들 즉 텍스트의 분자 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핀셋으로 들어올려, 불빛에 가져다가 신중하고 검토하고, 여러 방향으로 돌려보고 구부려보고 분질러보고 광을 내고는, 다시 불빛으로 가져다가 살짝 비벼보고, 그다음엔 굽혀보고, 내가 직조하고 있는 옷감의 직물에 끼워 넣는다. 그러고는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여전히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집어 빼내, 다른 단어로 교체하거나 같은 문장의 다른 위치에 끼워 맞추려 애써본 후 제거하고, 아주 아주 조금 한 줄로 쓴 다음, 약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맞춰볼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르게 배치해 보거나? 어쩌면 그 문장을 훨씬 밑에다가? 아니면 그다음 문장의 첫 부분에? 아니면 그 단어를 잘라내어 독립된 한 단어짜리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나?

나는 일어난다. 방 주위를 걸어다닌다. 책상으로 돌아온다. 몇 분간 그것을 노려보거나, 혹은 좀 더 긴 시간 노려보고, 전체 문장을 찍찍 그어버리거나 전체 페이지를 찢어버린다. 나는 절망 속에 포기한다. 나는 거기 앉아 전체를 다시 한번 시작하면서도, 큰 소리로 스스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일반적인 글쓰기를 저주하고 모든 언어를 저주한다.

소설을 쓰는 것은, 내가 한 번 말한 적이 있는데, 레고로 에돔 산을 만들려 하는 것과 같다. 혹은 성냥개비로 파리 전체, 건물이며, 광장이며, 가로수 길, 맨 마지막으로 거리의 벤치까지 만들려 하는 것과 같거나.

8만 단어짜리 소설을 쓴다면 수천 번 결정을, 그것도 그저 플롯의 개략적인 내용에 대한 결정이 아니라,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건지, 누가 사랑에 빠지고 누가 불충할 것인지, 누가 부자가 되고 누가 자기를 웃음거리로 만들 것인지를 결정하고 인물의 이름이며 외양, 그들의 습관이나 직업, 장을 나누는 일, 책 제목(이런 것들이 가장 단순하고 가장 광범위한 결정이다)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저 무엇을 이야기해나가고 얼버무릴지가 아니라, 뭐가 먼저 오고 뭐가 나중에 올 것인지, 무엇을 명쾌히 하고 무엇을 넌지시 암시할지 등도(이런 것들 역시 꽤나 광범위한 결정이다). 그러나 그 문단 끝 세 번째 문장에서 '푸른'을 쓸 건지 '푸르스름한'을 쓸 건지 같은 수천 개의 미세한 결정 역시 내려야 한다. 아니면 '창백한 푸른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하늘빛'? '기품 있는 푸른색'? 아님 정말 '푸른빛이 도는 잿빛'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이 '잿빛 푸름'은 문장 서두에 와야 하나, 끝에서 빛을 발해야 하나? 문장 중간에? 아니면 단순히 복문의 흐름 속에서 종속절에 따라붙어야 하나? 아님 '잿빛 푸름'이니 '먼지 같은 푸름'이니 하는 색깔은 넣지 말고, 세 단어 '그 저녁 빛'만 쓰는 게 가장 좋을까?(《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501~503)

 

 

글을 쓰는 건 이렇게 어려운데도 그 글을 쓰는 데 시간과 정력과 모든 것을 바칩니다.

작가들은 그게 일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작가가 아닌 나 같은 경우는 공연한 일인데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과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이러고 앉아 있습니다.

글과 글쓰기는 그만큼 좋은 것인지, 혹은 담배(혹은 마약) 같은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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