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던 시절에는 아내로부터 꾸중이나 원망, 잔소리 같은 걸 듣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내는 내 위세에 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에 넣어놓고 지냈을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건 내게는 하나씩 둘씩 어설픈 일들을 벌이고 쌓아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내가 그걸 때맞추어 지적했다면 나는 수없는 질책을 받았어야 마땅합니다.
아내는 이젠 다른 도리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고, 이젠 내 허물을 보아 넘기지 않게 되었고, 그때마다 지난날들의 허물까지 다 들추어버립니다.
아무래도 헤어지자고 하겠구나 싶은데 그런 말은 꺼내지 않는 걸 나는 신기하고 고맙게 여깁니다.
그러면서 '나는 언제부터 이런 질책을 듣지 않는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 한탄합니다.
공자님 말씀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맘대로 행동해도 거침이 없다).
나는 이런 말씀은 나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실현 불가능한 금언이어서 그런 경지에 이르러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꿈속에서도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하루 이틀 아내로부터 지적을 받지 않고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기간이 있으면 '이러다가도 자칫하면 또 지적을 받게 된다'든지 '이럴수록 조심해야 한다'든지... 그런 마음가짐 같은 건 조금도 떠오르지 않고 아예 그 생각을 잊게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기간은 결코 길지 않아서 한차례 질책이 끝나면 '좋아! 이제 내일부터 새 출발이야!' 다짐하곤 하지만 그런 다짐조차 수없이 이어져서 최근에는 '이건 아예 가능한 일이 아니구나',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구나'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들으며 산다는 걸 누구에게 발설만 하지 않으면 대체로 '저 사람은 교육자 출신이니까 집안에서도 점잖게 앉아 책이나 읽고 훌륭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겠지' 생각할 것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달 『현대문학』에서 마침내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살아도 살아도 늘 서투르고 어설픈 인생이고 싶소."
얏호!
김채원 작가가 법정 스님께서 쓰신 문장을 소개한 에세이 「바람에 실은 편지 (19)」에 이 문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법정 스님께서 나를 변호해 준 건 아니지요.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과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이 문장을, 아무리 살아도 철이 들지 않고 그렇다고 언젠가는 철이 들겠지 기대할 수도 없는 나의 입장을 잘 변호해 주는 금언이라고 생각해도 큰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살아도 살아도 늘 서투르고 어설픈 인생입니다."
나는 떳떳이 나를 설명하고 그러면서 기죽지 않는, 아내의 저 충고를 웃으며 받아들이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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