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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41

서귀포, 그리운 곳 이 선생님은 저곳에서 귤을 딴다고 했습니다. 도깨비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해서 "도깨비도감" "한국요괴도감" 드라마 "도깨비"등에서 본 도깨비들을 떠올리며 나는 도깨비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하자 어이없다는 듯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나이가 좀 적을 이 선생님은, 학교에 출근하면 만나던 그날들에는 때론 누나처럼 혹은 여동생처럼 대해 주었는데 지금도 정장을 입고 교장실에 앉아 있는 나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때와 달리 도깨비가 나올지도 모르는 곳에서 잡초를 뽑고 땅을 파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제 비행기 타고 서귀포 가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게 되었습니다. 서귀포, 그리운 곳... 2023. 11. 1.
가을 표정 최선을 다했는데 뭘 부끄러워하고 있을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2023. 10. 24.
외래어, 준말, 신조어 몇 가지 (3) 주의 깊게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려면 이 정도는 알아두어야 하겠구나 싶은 단어를 추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외래어와 조어, 줄인말 등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더 있겠지요, 물론. 네이버 사전, 다음 사전, 네이버 오픈 사전 등에서 가까운 의미를 찾으려고 나름 애를 썼습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 상황을 조작하여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통제하는 것 갬성 '감성(感性)'이 변형된 말. 個人的な感性(개인의 감성), を縮約した新造語 국룰 '국민 룰'의 줄임말. 보편적으로 정해진 규칙이나 행위, 유행 등을 가리킨다. 굿즈(goods) 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 드라마, 애니메이션, 팬클럽 따위와 관련된 상품이 제작된다. 메소드.. 2023. 10. 18.
하루 또 하루... 나는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다. 이후의 시간은 나 몰래 흘러서 금세 저녁이 되고 서성거리다 보면 깊은 밤이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가는 걸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 포기 상태가 되었다. 2023. 10. 13.
인생이 노래 같은 이도 있겠지요 꿈처럼 아름답던 날 그날에 날 담아보네 언제나 내 맘속에 그림처럼 숨 쉬는 꽃잎의 향기 같아 언젠가 잊혀지겠지 그런 게 인생인 거야 아련한 기억 속에 묻어둔 시처럼 자꾸만 흐려지네 Ye Lai Xiang 바람에 실려 Ye Lai Xiang 꽃잎에 담아 아아아 닿을 수 있겠지 꿈결 같던 그때로 가만히 뒤돌아보니 우리가 걷던 그 길엔 꽃잎은 피고 지고 계절은 또 바뀌고 내 모습도 바뀌었네 되돌아갈 순 없겠지 그런 게 인생인 거야 지금 난 행복하네 꿈꿔오던 향기가 내 앞에 춤을 추네 Ye Lai Xiang 바람에 실려 Ye Lai Xiang 꽃잎에 담아 아아아 닿을 수 있겠지 꿈결 같던 그때로 Ye Lai Xiang Ye Lai Xiang Ye Lai Xiang 노래 '야래향(夜來香)'은 1942년에 처음 나.. 2023. 10. 9.
가을 밤하늘 저 오리온 자다 깨면 생각들이 떠오를까 봐 두렵다. 생각들은 하나씩 하나씩 의식의 안으로 들어온다. 그제 밤에는 차라리 얼른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지난여름까지 밤새 보안등을 켜놓던 개울 건넛집도 가을 들어서는 깜깜하다. 하늘. 이제 빛을 보여주는 건 저 하늘뿐이다. 오리온 대성운은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곳 중에서 가장 가깝고 넓다는데도 거기 가려면 1500광년이 걸린단다. 9조 5천억 km×1500=...... 얼마나 먼 곳일까. 머나먼 곳 저 별들이 정겹게 깜빡이고 있다.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썼다. "우리의 좌절, 우리의 상심, 우리에게 전화하지 않은 사람을 향한 우리의 증오, 우리를 스쳐 지나간 기회에 대한 우리의 미련 같은 것들을 그런 우주의 이미지.. 2023. 10. 3.
TV 방송의 준말, 조어, 속어 익히기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내가 글을 쓸 줄 안다는 말은 아니지만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식으로 소설을 쓰거나 시를 짓거나 시나리오를 쓰는 것처럼 전문적인 글 말고도 할 줄 모르는 건 많다. 가령 몇 페이지고 줄 줄 써놓은 글을 다 읽고도 이게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싶은 철학적인 글도 쓸 수 없고, 블로그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그 퐁퐁 튀어 오르는 듯한 싱그러운 글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형편이 이러니 밖에 나가도 텔레비전 속의 저 사람들처럼 아무나 만나 대화하기도 사실은 불가능하지 싶다. 일전에는 어느 블로그에서 "친동생(친한 동생)"이라고 써놓은 걸 보고 놀라웠다. 그건 분명 친동생이 아니고 친한 동생인데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2023. 10. 2.
방송을 타고 흐르는 외래어 물결 내가 언제 노인이 되었나 싶은데 이것저것 한계를 느끼게 된다. 허구한 날들의 TV 시청조차 그렇다. '방송국 사람들'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가 흔하다. 감각적으로도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는 새로 나온 말들 때문이다. "텐션 올려!" 기운 내라는 걸까? 좀 들뜬 분위기를 조성하라? 열을 올려라? 글쎄... 장면 전환도 점점 더 빨라져 금세 금세 지나가버리니까 대충 들어도 되는 것일까? 이러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건 아닐까? "저 털딱충 때문에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외래어, 준말, 조어 같은 건 자제합시다." 사람들이 그렇게 할 리도 없다. '관계자'가 나서서 "이래서는 안 됩니다! 캠페인을 벌입시다!" 외칠 리도 없다. 걸크러시(girl crush)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 성적인 감정은 아님... 2023. 9. 30.
그녀를 위한 눈물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을 때는 좀 일러서 단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녀였고, 말이 없었고,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여서 한 번만 더 쳐다보고는 그만 봤습니다. 예사로운 장면이었다면 마음놓고 몇 번 더 살펴봤겠지요. 어머니는 많이 늙었고, 딸은 삼사십 대?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고 냉랭한 표정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서 나가면서도 그들 사이에는 단 한 마디 대화도 없었습니다. 딸이 계산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바닥에 무거운 물건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두 명의 여 종업원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습니다. 그런데도 딸과 어머니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출입구와 홀 사이에 파티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만에 일어나는 듯했습니다. "괜찮아요.. 2023. 9. 27.
돈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자히르」에는 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소설집《알레프》). 잠을 이루지 못해 뭔가에 홀린 듯이 거의 행복한 마음으로 나는 돈보다 더 물질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어떤 동전이든지(가령 20 센터보짜리 동전) 가능한 미래의 창고이기 때문이다. 나는 "돈은 추상적이다. 돈은 미래의 시간이다."라고 되풀이했다. 그것은 외곽 지역에서의 어느 오후일 수도 있고, 브람스의 음악일 수도 있으며, 지도일 수도 있고, 체스일 수도 있으며, 커피일 수도 있고, 황금을 경멸하도록 가르치는 에피테투스(Epictetus 55?~135?, 스토아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의 말일 수도 있다. 그것은 파로스 섬의 프로테우스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한 프로테우스이다. 그것은 .. 2023. 9. 24.
불안·초조감으로 시작되는 아침 "뉴스는 절대로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이 한 말이다(《뉴스의 시대》). 오래전에 읽었지만 나는 요즘도 아침부터 뉴스에 시달린다. 아내는 세상 돌아가는 건 대충이라도 알아야 한다면서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각부터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뉴스를 청취하는데 나에게는 그걸 말릴 명분이 없다. 뉴스를 전하는 방송국 사람들은 대체로 언성을 높인다. 자동차 역주행 사고나 화재 같은 시시한 아니, 시시한 건 아니지? 일상적인? 아니지? 일상적이라니... 어쨌든 그런 뉴스를 전할 때는 더욱 흥분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정치 소식은 하루도 빠짐이 없다. 그것도 거의 전투 상황 같다. 아무리 훌륭하고 중요한 일들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방송국 직원들이 고래.. 2023. 9. 21.
이 세상의 귀뚜라미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덥긴 하지만 처서가 지난 주말이었다. 귀뚜라미는 가을이 왔다는 걸 귀신같이 안다. 2004년 9월, 십몇 년 간 세상에서 제일 번화한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내가 용인 성복초등학교 교장으로 갔을 때 그 9월은 가을이었다. 가을다웠다. 나뭇잎들은 화려했다. 그렇지만 그곳 가을은 조용하고 쓸쓸했다. 귀양이라도 온 것 같았다. 아침에 교장실에 들어가니까 귀뚜라미가 울었다. 내가 멀리서 통근한다는 걸 엿들은 그 귀뚜라미가 설마 정시에 출근하겠나 싶었던지 마음 놓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신기하고 고마웠다. "귀뚜라미가 우네요?" 광화문 교육부 사무실에서 전쟁하듯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인데 그럴 수가 없어서 눈에 띄는 아무에게나 알려주었다. 5분도 되지 않았는데 기사가 들어오더니.. 2023.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