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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41

눈이 내리네 2023. 12. 16.
영화 사부: 영춘권 마스터 영춘권의 마지막 사부가 각 문파를 차례대로 격파하고 훌훌히 떠난다.온갖 생각이 오고가도 쳐다보고 있으면 되는 영화가 좋을 때는, 공연한 신경 쓰지 않고 쳐다보고 있으면 되니까 좋다.      스틸 컷을 몇 장 복사해 보았다.        김 교수가 영화 "오펜하이머" 봤냐고, 거기 자신의 친구들이 여럿 나온다고 두 번이나 이야기했는데...(2023.12.6. 수) 2023. 12. 15.
"야, 이놈들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고달픈 삶이랄까, 그 이전이 보잘것없는 세월이었다면 이후는 고달픈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일들이어서 말하자면 나는 세월에 끌려다녔다. 그럭저럭 책은 좀 읽었다. 그건 국어를 가르쳐주신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굽이굽이에서 그분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중학교 담임도 국어 교사였는데 그는 취미란에 '독서'를 써넣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온갖 창피를 다 주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고 필수라느니 이제 온 국민이 독서를 생활화해야 한다느니, 무엇보다도 독서를 밥 먹듯 해야 한다느니...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독서에 힘쓰지 않고 돈 버는 일에만 매진하는 게 마치 중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내 잘못인양 한 시간 동안 나를 세워놓은 채 그렇게 지껄여대는 바.. 2023. 12. 13.
발광 어떤 종류의 빛이 어딘가에서 생성되는 것은 어떤 들뜬excited 원자의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떨어지거나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이동할 때다. 이렇게 움직일 때 에너지는 얻거나 잃는데, 이 에너지는 광자의 형태로 방출된다. 이처럼 원자를 '들뜨게'exciting 함으로써 빛을 내는 것을 일반적으로 '발광'luminoscence이라는 아주 멋진 단어로 표현한다. '발광'을 설명한 글이다(엘라 프랜시스 샌더스『우아한 우주』25). 그러니까 이건 '發光'으로 사전에도 '빛을 냄', '원자 속의 전자가,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에너지가 낮은 상태로 옮겨갈 때 두 상태의 에너지의 차를 빛으로 내보내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위의 글에서는 "아주 멋진 단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발광'.. 2023. 12. 7.
삶의 상수(常數), 소홀치 않은 장수세(長壽稅) 고난, 수모, 좌절, 소외는 삶의 상수이다. 이 상수의 강력한 관성이 노년의 삶을 추동하는 것이다. 장수가 반드시 호강은 아니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장수세는 소홀치 않다. 지난해 "현대문학" 9월호(115면)에서 원로 평론가 유종호(1935~) 선생이「오랜 삶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렇게 썼다. 고난, 수모, 좌절, 소외, 이것들이 강력한 관성이 되어 오히려 그의 노년을 지탱해 주는 삶의 상수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만 고난, 수모, 좌절, 소외를 당하면서도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하물며 나 같은 처지에 뭘 따지겠나. 다 그렇다, 그럴 수 있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자. 일일이 따져서 뭘 하겠는가. 길면 긴 대로 생각.. 2023. 12. 6.
해 뜨는 시간의 인사와 기도 모든 것은 질량 중심 둘레를 돈다. 태양 역시 다른 별들과 함께 은하수 중심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이 한 번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천문학적 1년이라고 하는데, 이는 시속 82만 8,000킬로미터에 해당한다. 이렇게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여도 은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지구 시간으로 약 2억 3천만 년이나 걸린다. 일전에《우아한 우주》(엘라 프랜시스 샌더스)라는 책에서 이 글('전형적인 별, 태양')을 읽었다. 우리 세상의 저 태양이 새삼 고마웠다. 시속 82만 8,000킬로미터! 그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태양이 "난 하도 많이 돌아서 이제 이 짓이 싫어!" 하고 딴 곳으로 달아나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 태양이 은하 둘레를 딱 한 바퀴만 도는 데 2억 3천만 년이나 걸린다니.. 2023. 12. 5.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죠? 어느 계절이 좋은지 묻는 사람이 있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거나 내게 호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대답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하니까─지금 그걸 묻는 사람이 내가 전에 대답해 준 다른 사람에게 그때도 그렇게 답했는지 확인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내가 지금까지 어느 계절이 좋다고 대답해 왔지? 잠시 생각한다("답설재는 어째 사람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까? 전에 B에게는 가을이 좋다고 했지 않습니까?" 하면 내 꼴이 뭐가 되겠나). 나는 겨울이 좋다. 한가해서 좋다. 들어앉아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좋다. 자고 나면 또 그런 날이어서 그런 시간이 길게 이어져서 좋다. 학교 다니던 아이들도 제각기 들어앉아서 어떤 핑계를 대면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을지 궁리를 할 것 같아서 생각.. 2023. 12. 3.
꿈, 어쩔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사나흘 전에는 새로 배치된 학급의 아이들 앞에서 교사용 책상을 정리하는 꿈을 꾸었다. 내 경험 속 아이들은 당연히 긴장 상태였겠지, 화가들이 흑백으로 그린 '말없는 군중'처럼 혹은 무대 배경처럼 저쪽에서 내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고, 나는 책상 설합들을 일일이 열어보고 거꾸로 닫힌 것은 새로 닫으며 좀 불편한 느낌이었다. 어젯밤에 또 학교 꿈을 꾸었다. 어딘지 한동안 헤매면서 이제는 느낌으로 찾아다니지 말고, 대중교통 노선을 암기해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어서 연수회장을 빠져나오는 장면, 뭔가 잊고 나온 게 있어 다시 들어갔다가 강의 중인 강사를 쳐다보고 나와서 각자 모종의 주장들을 내세우는 교사들과 함께 걷는 장면, 학교 안으로 들어가 돌아다니는 장면이 이어졌다. 우리 학년이 담당한 구역의 환경구성.. 2023. 12. 2.
아이들은 어떻게 하여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아이들은 다 예쁘다" "내가 교장이었을 때 내 눈에는 천삼백 명 아이들이 다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시큰둥한다. '평생 아이들을 상대하며 살았으니까 저런 소리나 하고 있겠지.' 이번에 나는 좀 어려운 책을 읽다가 그 생각이 옳다는 걸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글을 발견했다. 유명한 책이니까 그 철학자 생각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에리히 프롬'이고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자발성의 또 다른 예를 제공한다. 그들은 정말로 '자기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자발성은 아이들의 말과 생각에 드러나고, 아이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에 드러난다.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린아이들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감상적인 이유나 관습적인 이.. 2023. 12. 1.
돈 : 내 친구 김교수의 경우 10월 25일 수요일에 그 카페에서 만났을 때 김 교수는 뜻밖의 주문을 했다. "우리 스테이크 시킵시다." "비싼 걸 뭐 하려고요." "제가 살게요....." 김 교수는 미국에서 한 달에 1,000만 원 정도의 연금이 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좀 써도 된다는 것이다. 손바닥 1/3만 한 크기의 스테이크가 나온 걸 본 순간 '이게 5만 원짜리라고? 이걸 먹고 때가 되겠나' 싶었다. 먹고 나니까 보기와 달랐다. 김 교수는 반밖에 먹지 못해서 남긴 걸 보니까 좀 아까웠다. 식사를 마쳤을 때, 11월에 만나면 당연히 내가 사야 하고 나도 굳이 스테이크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요즘도 댁에서 치킨, 떡볶이 같은 것도 배달시켜 먹는지 물어보았다. "아, 그럼요! 치킨, 떡볶이는 늘 최고죠!" "그럼 다음에는 제가 그걸 .. 2023. 11. 30.
가고 싶은 별 지구 표면에 서 있는 인간이 보기에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은 시리우스인데, 불과 8.6광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도가 가장 높은 별은 아니다. 시리우스가 들어 있는 큰개자리에만 해도 광도가 수천 배 이상 높은 별이 적어도 세 개 이상 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게 밝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반면, 평범한 별이라도 우리가 있는 곳에선 대단히 눈에 잘 띌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우리를 향해 출발한 한 점의 밝은 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이름을 붙이고, 이웃을 만들어준다. 1963년 2월,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마르틴 슈미트는 하늘에서 유난히 밝은 점 하나를 분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까이 있는 별이겠거니 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천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 2023. 11. 28.
광고는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 (...) 근대적 광고는 대부분 전혀 다르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한다. 최면술의 암시와 마찬가지로 광고는 대상에게 감정적으로 깊은 인상을 준 다음 지적으로 그들을 굴복시키려고 애쓴다. 이런 유형의 광고는 온갖 수단으로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같은 표현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기도 하고, 사교계의 부인이나 유명한 권투선수가 어떤 브랜드의 담배를 피우는 모습처럼 권위 있는 이미지의 영향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예쁜 소녀의 성적 매력으로 고객을 매혹시키는 동시에 그의 비판 능력을 약화시키기도 하고, 체취나 구취가 날지도 모른다는 위협으로 겁을 주기도 하고, 어떤 셔츠나 비누를 사면 인생 전체가 갑자기 달라진다는 몽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방법들은 모두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다. 상품의.. 2023.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