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적 광고는 대부분 전혀 다르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한다. 최면술의 암시와 마찬가지로 광고는 대상에게 감정적으로 깊은 인상을 준 다음 지적으로 그들을 굴복시키려고 애쓴다. 이런 유형의 광고는 온갖 수단으로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같은 표현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기도 하고, 사교계의 부인이나 유명한 권투선수가 어떤 브랜드의 담배를 피우는 모습처럼 권위 있는 이미지의 영향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예쁜 소녀의 성적 매력으로 고객을 매혹시키는 동시에 그의 비판 능력을 약화시키기도 하고, 체취나 구취가 날지도 모른다는 위협으로 겁을 주기도 하고, 어떤 셔츠나 비누를 사면 인생 전체가 갑자기 달라진다는 몽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방법들은 모두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다. 상품의 품질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아편이나 최면술처럼 고객의 비판 능력을 억누르고 마비시킨다. 이런 광고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공상적인 성질을 갖고 있어서 고객에게 어떤 만족감을 주지만, 그와 동시에 고객에게 하찮고 무력하다는 느낌을 더욱 높인다.
비판적 사고력을 둔화시키는 이런 방법들은 사실 우리의 민주주의에는 공공연한 공격보다 더 위험하고, 출판하면 벌을 받는 외설 문학보다─인간 본래의 모습이라는 면에서─더 부도덕하다.
에리히 프롬이 1941년에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1941년이면 80년이 넘었다.
광고는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깊은 인상을 준 다음 지적으로 굴복시키려고 애쓴단다.
온갖 수단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단다.
같은 표현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기도 하고,
유명인사를 동원해서 권위 있는 이미지의 영향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예쁜 소녀의 성적 매력으로 매혹시키고 비판 능력을 약화시키기도 하고, 체취나 구취가 날지도 모른다는 위협으로 겁을 주기도 하고, 어떤 물건을 사면 인생 전체가 갑자기 달라진다는 몽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단다.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란다. 상품의 품질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우리의 비판 능력을 억누르고 마비시킨단다.
공상적이어서 어떤 만족감을 주지만, 하찮고 무력하다는 느낌을 더욱 높인단다.
비판적 사고력을 둔화시키는 이런 방법들은 우리의 민주주의에는 공공연한 공격보다 더 위험하고, 출판하면 벌을 받는 외설 문학보다 더 부도덕하단다.
잘 모르겠다.
방송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은 음식점에 대해서는 좀 살펴본 것 같다.
마음까지 휘둘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
방송에 나왔다는 음식점에서 "맛있다"는 말을 해본 적은 없지 싶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최고라고 손가락을 꼽으며 야단을 치던 사람들이 생각나는데 금방 문을 닫은 집도 봤다.
우리 동네에도 방송에 나온 음식점은 몇 군데 있다. 맛있는 집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점심때인데도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는 집도 봤다. 희한하구나 싶었다.
언젠가 논현역 뒷골목에서 "○○○·◇◇◇·□□□ 방송에 나오지 않은 집"이라고 크게 써붙인 집도 봤다. ○○○·◇◇◇·□□□ 글자는 빨갛게 크게 씌여 있었다. 우리는 좀 웃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음식점 살펴본 생각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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