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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죽음 너머로의 대화

by 답설재 2023. 11. 17.

 

 

 

나는 오래전에 죽은 아버지, 어머니와의 대화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쩌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나도 죽어 저승에 가면 만나서 회포를 풀 수 있을까 싶기는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가끔이긴 하지만 전보다는 자주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게 되었다.

또 전에는 내게 짐을 맡기고 일찍 세상을 떠난 두 분에 대한 원망이 컸지만 최근에는 있었던 일을 떠올리거나 이 일 저 일로 미안한 마음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원망하는 마음은 절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저승으로 간지 51년, 논밭에서 죽도록 일만 한 일생, 큰댁에 걸핏하면 나락을 다 퍼주는 아버지와 다투던 일, 내가 초임 발령받은 학교 운동장에서 사진 찍은 일, 아내가 첫째를 임신하여 만삭의 몸으로 아픈 어머니를 업고 시냇물을 건넌 일, 오리 고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령 시장 어느 가게에서 밤을 새운 일, 동인병원에서 나와 황간역에서 가락국수를 사 먹던 일, 임종 직전 나는 잠깐씩 아내는 더 오랜 시간 이불을 덮은 채 번갈아 안고 있던 일, 숨을 거두고 나자 눈 내리는 하늘이 노랗게 보이던 일 등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23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해서는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생각하고 이야기한 것들, 서로의 마음 같은 것들을 더 많이 떠올린다.

 

나는 이것이 '대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억 혹은 추억들이 내게 위안을 주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는 그럼, 그렇지 하는 편이고, 아버지는 나의 모든 것, 있었던 일이나 지금 있는 일, 나의 생각에 대해 일일이 수긍하고 추인해 주기도 한다. 아버지 같아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내 마음은, 편안해지고 있다.

 

아, 내가 오래전 세상을 떠난 두 분과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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