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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죠?

by 답설재 2023. 12. 3.

벚꽃잎이 내리던 날, 좋았던 그날, 땀 흘리며 일하다가 친구와 통화하며 바라보던 그날

 

 

 

어느 계절이 좋은지 묻는 사람이 있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거나 내게 호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대답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하니까─지금 그걸 묻는 사람이 내가 전에 대답해 준 다른 사람에게 그때도 그렇게 답했는지 확인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내가 지금까지 어느 계절이 좋다고 대답해 왔지? 잠시 생각한다("답설재는 어째 사람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까? 전에 B에게는 가을이 좋다고 했지 않습니까?" 하면 내 꼴이 뭐가 되겠나).

 

나는 겨울이 좋다.

한가해서 좋다.

들어앉아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좋다.

자고 나면 또 그런 날이어서 그런 시간이 길게 이어져서 좋다.

학교 다니던 아이들도 제각기 들어앉아서 어떤 핑계를 대면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을지 궁리를 할 것 같아서 생각만 해도 좋다.

좋은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지내기에는 봄가을이 좋다.

잎 피고 꽃 피는 봄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화려한 가을이 싫을 이유도 전혀 없다.

여름도 좋은 이유를 찾으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나는 지금은 사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좋아한다.

수십 년, 이 계절을 좋아했다가 저 계절을 좋아하고 그러면서 그 계절들을 다 좋아하게 되었다.

굳이 한 가지 계절을 고르고 싶지 않게 되었다.

몇 번의 순환이 더 허락될까?

누가 물으면─물을 사람도 없는 질문이 되어버렸지만─이제부터라도, 혹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지만, 사시사철 다 좋다고 대답하자.

지금까지는 겨울이 좋았지만 최근 사시사철을 다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자.

최근에 발견한 것을 처음 그에게 이야기한다고 말해주면 속으로 좀 놀라워해줄까?

 

섭섭하지만 사실은 내게 그걸 물을 사람이 없겠지?

그럼 전화로라도 당신은 어느 계절을 좋아하는지 물어볼까?

그러면 대답해 주면서 "답설재는 어느 계절이 좋은가요?" 하고 물을 가능성이 있겠지?

그는 ①(봄) ②(여름) ③(가을) ④(겨울) 중에서 고를 줄 알고 기다렸다가 내가 "나는 ⑤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예상외라고 느끼겠지?

용건에 대한 얘기가 끝나면 덧붙여 물을 수 있겠지?

"이건 여담(餘談)인데요,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