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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 세상의 귀뚜라미

by 답설재 2023. 9. 17.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덥긴 하지만 처서가 지난 주말이었다.

귀뚜라미는 가을이 왔다는 걸 귀신같이 안다.

 

2004년 9월, 십몇 년 간 세상에서 제일 번화한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내가 용인 성복초등학교 교장으로 갔을 때 그 9월은 가을이었다. 가을다웠다.

나뭇잎들은 화려했다. 그렇지만 그곳 가을은 조용하고 쓸쓸했다.

귀양이라도 온 것 같았다.

아침에 교장실에 들어가니까 귀뚜라미가 울었다.

내가 멀리서 통근한다는 걸 엿들은 그 귀뚜라미가 설마 정시에 출근하겠나 싶었던지 마음 놓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신기하고 고마웠다.

"귀뚜라미가 우네요?"

광화문 교육부 사무실에서 전쟁하듯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인데 그럴 수가 없어서 눈에 띄는 아무에게나 알려주었다.

5분도 되지 않았는데 기사가 들어오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잡아버리겠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뭘요? 뭘 잡아요?"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 주고 나서 창밖이나 내다보았다. 그 동산에도 가을이 와서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제 다시 20년이 지나간 날의 그 귀뚜라미가 여기로 나를 찾아와 울고 있었다.

귀를 기울였다.

'내가 퇴임한 지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우나? 왜 울지? 뭐 하려고 울지?'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어렵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고 간단한 것이다. 저 귀뚜라미들은 내가 여기 없는 시간에도 울고, 내가 사라져 버린 다음에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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