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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다정함·부끄러움

by 답설재 2023. 9. 12.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었습니다.

나 때문에 나 혼자 다녀오는 대부분의 날들보다는 운전이나 뭐나 신경이 더 쓰이지만 덜 심심합니다.

 

진단을 위한 사전검사를 받고 뜰에 나가 앉아서 쉬었습니다. 아침 일찍 검사 받고 오후에 진료를 받아야 하므로 쉬는 것이 아니라 네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정원에 참새 몇 마리가 다녀가더니 이번에는 비둘기 한 쌍이 와서 쉬었습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다정하던지...

"저것들도 저러네?"

아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젊었을 때는 속으로 '에이, 비둘기 같은 사람!'이랄까봐 부끄러웠을 것인데 지금은 '에이, 비둘기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니겠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에이, 비둘기만도 못한..."일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러나저러나 유치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비둘기는 저렇게 늘 떳떳하고 다정하고 나는 이러나저러나 늘 부끄럽고 유치하다니......

 

이러면 더 유치해지지만 나만 비둘기만도 못할까요?

몇 사람 더 있겠지요?

비둘기만도 못한 인간들이 "비둘기는 해조(害鳥)!"라고 못마땅해 하는 건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비둘기만큼 이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들이 어디 있기나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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