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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사랑58

가와바타 야스나리 『서정가抒情歌』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천상병 옮김* 『서정가抒情歌』 Ⅰ 죽은 사람을 향해 말을 건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서 지녔던 모습으로 살아있는 줄로 안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식물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과의 유사점을 느끼는 것이 모든 서정시(抒情詩)의 영원한 제목이다―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마저도 잃어버렸고, 그뒤에 계속되는 구절도 모르고 이 말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식물이란 다만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만이 그 뜻인지, 보다 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불교의 여러 경문(經文)을 비길 데 없이 귀중한 서정시라고 생각하는 요즈음의 저는, 지금 이렇게 해서 고인(故人)이 된 당.. 2016. 3. 3.
가와바타 야스나리 『산소리』 가와바타 야스나리 『산소리』 신현섭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0 Ⅰ 싱고 부부는 아들 슈이치 부부와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바람을 피우는데 딸 후사코마저 친정으로 돌아옵니다. 사위 아이하라가 마약 중독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건 며느리 기쿠코가 낙태를 한 일입니다. 바람을 피우는 슈이치에 대한 복수 같습니다. 싱고는 고독합니다. 인생관이 자신과 다른 아들 슈이치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아내 야스코도 싱고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싱고 자신도 동경했던 연상의 여인이 죽자 그녀의 동생 야스코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했고 야스코도 사실은 미남인 형부를 사랑했었습니다. 언니가 죽자 당장 형부와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런 감정을 감추고 살아왔습니다... 2015. 12. 6.
인연 잊어가기 Ⅰ 子曰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독립하고, 마흔에 불혹(不惑)하고, 쉰에 천명(天命)을 알고, 예순에 이순(耳順)하고, 일흔에 하고싶은 바를 좇되 법도(法度)를 넘지 않았느니라. (孔子) 爲政 四 子曰 『五十有五에 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호라』). 나의 경우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여기에 이르러, 무엇을 숨기거나 안 그런 척 그런 척하기는 싫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드디어 다 드러내고, 그렇게 하여 홀연히 가고 싶습니다. 지나가버린 일들은 일일이 설명하기가 싫긴 합니다. 일어난 일은 금방 기억의 저쪽으로 사라져가서 마침내 아득해지고, 그 일들과 함께 사람.. 2015. 11. 19.
기승전결(起承轉結) 기(起) 승(承) 전(轉) 결(結) '나도 저렇게 해서 오늘 여기에 이르렀다면……' 소용도 없고 무책임한 생각을 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일을 저렇게 전개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끌고 왔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약속한 건 단 한 가지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더러 오탁번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핑계를 대고 위안을 삼고자 한 것입니다. 구름을 비껴 날으는 기러기 같은 당신을 밤나무나 느티나무 가지 위에 얼기설기 지어놓은 까마귀 둥지로 손짓해 불렀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괴롭습니다 어둠의 문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서 우리가 꿈꾸어온 시간은 나뭇가지 끝 겨우살이처럼 덧없는 목숨은 아니었습니다 여름날 장독대 위에 내리는 여우비처럼 울 수만은 없어서 이렇게 높은 하는 쳐다보고 또 쳐다봅.. 2015. 9. 7.
감기 걸려 목이 아픈 날 감기 걸려 목이 아픈 날 "감기 걸렸다며?" "응." "먼지가 많아서 조심해야 해." "응?" "조심해야 한다고―." "응." "밥도 많이 먹고―." "응." "밖에는 먼지가 많으니까……" "응?" "바람 속에 먼지가 많은 날이니까 답답해도 집에 있어야 한대." "응." "병원 가야지?" "응." "의사 선생님이 약 먹으라.. 2015. 2. 26.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정현종 옮김, 물병자리 2002 당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없는 까닭은 당신이 그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죽음은 말이며, 공포를 낳은 것은 이 말이요, 이미지이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이미지 없이 죽음을 볼 수 있는가? 생각이 솟아나는 원천인 이미지가 존재하는 한, 생각은 언제나 공포를 낳는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공포를 합리화하고 그 불가피한 것에 대항하든가 아니면 당신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믿음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당신과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 시공(時空)의 틈 속에 공포, 불안, 자기 연민인 갈등이 분명히.. 2015. 1. 27.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타우노 일리루시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박순실 옮김, 대원미디어, 1995 노부부의 가슴 짠한 사랑과 사별(死別)을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가 개봉 15일 만에 관객 40만명을 넘어서며 일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11일까지 총 관객 수는 42만118명. 290만 관객을 모은 역대 다큐 최고 흥행작 '워낭소리'보다 13일 일찍 '40만명 고지'에 올랐다. …(중략)…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복고(復古)와 향수(鄕愁)라는 시대 코드를 멜로 형식에 담아 자연스럽게 젊은층도 호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사 진진 김난숙 대표는 "'저렇게만 살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는, 눈물 흘리면서도 행복한 영화"라고 했다. 신문기사입니다.1그것도 이미 지난 주말.. 2014. 12. 16.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유숙자 옮김, 민음사, 2002 이 찬란한 여름에 설국(雪國)'이라니! 둘러댈 이유를 찾아볼까 싶었지만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밖에는 없습니다. 1980년대의 어느 날, 석박사 학위논문 계획 발표회에서 사창가 여성들의 이동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겠다고 하던 학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는 사창가 여성을 구경한 적이나 있을까 싶은, 남성의 특징을 고루 구비하고 있기나 한지 확인해보고 싶을 만큼 '얌전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조사하겠다는 건지…… 이젠 그 학자가 누군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문제를 파헤쳐 발표하는 표정은 심각하지만 정작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는 불분명한, 한심한 학자가 아니면 좋을 것입니다. ♬ 이 사랑 이.. 2014. 9. 1.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최혁순 옮김, 문예출판사 2013 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단순하긴 하지만 압도적으로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생애를 지배해왔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지식의 탐구, 그리고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열정이 마치 거센 바람처럼 제멋대로 나를 몰고 다니면서 번민의 깊은 바다를 이리저리 헤매게 했고 절망의 극한에까지 이르게 했다. 내가 사랑을 추구해온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황홀한 열락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몇 시간에 불과한 이 즐거움을 위해 내 남은 인생 전부를 희생하려 했던 적이 종종 있었을 만큼 사랑의 열락은 대단한 것이다. 내가 사랑을 추구해.. 2014. 7. 20.
『신기한 여행』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케이트 디카밀로 글·배그램 이바툴린 그림/김경미 옮김, (비룡소, 2009, 2014 1판13쇄) 드러내놓고 이런 책을 보려면 눈치가 보이는 나이가 되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거의'내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럴 때도 있나?' 싶어서 신기하고 행복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서 더욱 좋습니다. 또 동화책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생각나는 것을 이렇게 적어 두는 것입니다. ♬ 27장 다음의 '맺음말'이 마침 줄거리 소개와 같아서 옮겨보겠습니다. 옛날에 토끼가 있었어요. 토끼는 어린 여자아이를 사랑했고 그 아이가 죽어 가는 걸 지켜보았어요. 그 토끼는 멤피스 거리에서 춤을 추었어요. 그리고 어느 식당에서 머리가 산산조각이 났지만.. 2014. 6. 8.
저 아이들을 사랑하기로 하자(2014.4.28) 저 아이들을 사랑하기로 하자 그해엔 1학년을 담임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란, 무슨 볼일들인지 고물고물 끝없이 기어 다니는 개미들 같고, 뱅글뱅글 맴도는 앙증맞고 야단스런 풍뎅이 같은가 하면, 팔랑거리며 날아다녀봤자 잡히는 순간 가루로 바스러질 나비 같았다. 그런 것들에게 아.. 2014. 4. 27.
저 이쁜 부부 운동복 차림에 허름한 모자를 쓰고 산비탈을 오릅니다. 저기쯤 앞에 오순도순 젊은 부부가 가고 있습니다. 뒤따르는 아내의 두 팔이 '팔랑팔랑' 나비날개처럼 움직여 오르막인데도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뒤따르는 걸 눈치 챘는지 걸음이 좀 빨라지는 듯했고, 이내 남편이 뒤에 섰습니다. 내가 아무래도 음흉해 보이는가보다 싶었고, 공연한 추측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는 무슨 볼일이나 있는 것처럼 멈춰 서서 먼 산을 좀 바라보며 어슬렁거리니까 이내 저만치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오르면 안 되겠다 싶은 곳에서 골짜기를 벗어나 큰길로 나섰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그 부부를 보았습니다. 그 길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좀 흉측해 보이는 내가 뒤따르는 걸 이번에는 눈치 채지 못했는지 무슨 얘기.. 2013.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