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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조지 오웰 《1984》

by 답설재 2016. 9. 21.

조지 오웰(소설)《1984》

George Orwell : Nineteen Eighty-Four

김기혁 옮김, 문학동네 2016

 

 

 

 

 

 

 

 

'소설이다' '소설일 뿐이다' 하며 읽는데도 자주 그 상황이 실제 같아서 빠져들며 읽었다. 공포감이 엄습했다.

자신이 인간이란 게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이 권력 앞에서 어떻게 절망하고, 패배하고, 파멸해 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금 이 세상은 이 소설 속 세상의 다음 세상인가?

그렇다면 좋겠지만, 앞으로 이런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건 아닐까?

 

 

 

 

세계는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 동아시아의 3대 초강대국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고 있다. 전면전이나 종전도 없고 승리도 패배도 없이 줄기차에 계속되기만 하는 전쟁. 구호는"전쟁은 평화"다.

오세아니아는 당이 사상과 역사 통제를 정치의 근본으로 하여 역사의 날조, 개인의 자유와 평등·진실·사랑 등 인간성 말살을 일삼는 독재정치를 하고 있다.

 

정부는 전쟁을 관할하는 평화부, 사상을 통제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애정부, 물자 공급을 맡은 풍부부, 선전 즉 보도·연예·교육 및 미술을 관장하는 진리부 등 4부뿐이다. 거의 모든 곳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 스파이단(내부 고발을 자랑스러워하는 어린이 조직) 등으로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과 표정(정신, 마음)까지 감시한다.

 

사람들은 진실과 허위를 구별할 능력조차 상실하고 당에서 제시하는 모든 것을 믿고 따르는 굴종 상태가 되어 있다. 구호는 "굴종은 자유", "무식은 힘"이다.

 

전쟁이란 정상적인 정신을 지켜주는 수단이 되며, 지배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마 가장 중요한 안전책이 되었을 것이다. 전쟁에 이기건 지건 간에 지배층이 완전히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우리 시대의 전쟁은 각 지배집단이 그 백성에 대해 싸우는 것이며, 또 전쟁의 목적이 영토 확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체제를 고스란히 지키려는 데 있다.(242)

 

인쇄술의 발명은 국민 여론을 쉽게 조작할 수 있게 했고 영화와 라디오가 그것을 한층 더 진전시켰다. 텔레비전의 발전과, 한 번에 동시에 송수신이 가능한 기계의 발명으로 개인의 사생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250)

 

현 지배층의 관점에서 볼 때 오직 진짜 위험은, 유능하나 하급의 일자리에 고용되어 있으며 권력에 굶주린 사람들로 구성된 새로운 집단의 출현과, 지배계급 자체 내에서의 자유주의와 회의주의의 성장이다. 말하자면 교육적인 문제이다.(253)

 

 

 

 

이 모순, 횡포, 절망 속에서 제정신을 갖고 있는 마지막 한 명의 인간 윈스턴 스미스는 줄리아를 만나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그 윈스턴마저 결국 오브라이언의 무서운 고문과 설득으로 제정신을 잃고 만다.

 

윈스턴은 그 사랑 줄리아까지 배신하고, 이제 빅 브라더(Big Brother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를 '사랑'하며 빅 브라더에 대한 그 사랑이 변하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하며 죽을 날을 기다린다.

 

한동안 어린아이처럼 오브라이언에게 매달렸고 묵직한 팔이 자기 어깨를 감싸고 있자 이상하게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오브라이언이 그의 보호자이고, 고통은 어디 다른 외부로부터 온 것이며, 고통에서 자기를 구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오브라이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306)

 

"윈스턴,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권력을 주장할 수 있겠나?"

윈스턴은 생각했다.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 됩니다." 그는 대꾸했다.

"바로 그거야. 그 인간을 괴롭히면 돼. 복종으로는 충분치 못해. 그가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가 자기 의사가 아닌 상대방의 의사에 복종하고 있다고 믿겠는가?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는 데 있는 거야. 권력은 인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모양으로 다시 뜯어 맞추는 거야. (……)"(327)

 

"줄리아한테 해요! 줄리아한테 해요! 내가 아니야! 줄리아야! 그 여자한테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단 말이에요! 얼굴을 갈기갈기 찢고, 뼈다귀가 나올 때까지 해치워요. 내가 아냐! 줄리아한테 해! 나는 안 돼!"(353)

 

 

 

 

책을 덮고 나서도 음산한 세상에 대한 공포감을 느꼈다. 악취가 몸에 밴 것 같았다.

이런 책은 정말 싫다. 그건 아니지? 책이 싫은 게 아니다. 이런 세상이 싫다.

이런 세상이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그걸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교육이다.

여간한 인물이 아니었을 조지 오웰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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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영국 작가로 1903년 인도의 벵골에서 식민국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이다. 열네 살이 되던 1917년부터 5년 동안 왕실 장학금을 받으며 명문 이튼에서 교육을 받았고, 1922년에는 버마(미얀마)로 건너가 경찰관이 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직무가 그의 생리에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식민 정책의 비리가 역겨웠고, 또한 뜨거운 문학에의 열망을 어쩔 수 없어 1927년 경찰관직을 그만두고 문학 수업 차 런던으로 간다. 이후 파리로 거처를 옮기는데 이 시기부터 극히 궁핍한 '따라지 인생'의 생활이 시작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그는 가정교사, 접시닦이, 서점 점원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일자리가 업을 때는 내의까지 전당포로 들고 가고, 그나마도 떨어지면 의식이 몽롱해질 때까지 굶는 생활을 계속했다. 이 무렵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처녀작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으로, 이 작품에는 육체적으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심리와 생활상, 그리고 그런 상황을 끈질기게 견뎌내는 강인한 인간상 등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 김기혁(번역자), 해설 '전체주의와 독선에 대한 불굴의 항거'의 첫 부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