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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베르 카뮈(소설) 《이방인》

by 답설재 2016. 9. 22.

알베르 카뮈 이방인》 ILLUST

호세 무뇨스 그림 |김화영 옮김

 

 

 

 

 

 

카뮈의 작품이어도 시큰둥했었는데(그는 "아, 됐어." 하겠지만) 다시 읽으며 흥미진진했다.

그러니까 나는 드디어 초보단계에 들어섰다.

 

할일이 싫어서 책을 읽었을 것이고, 이 책을 읽으며 그랬을 것이다.

'별 희한한…….'

그러면서도 읽은 건 '부조리' '실존주의' 같은, 어렵고 설명해 줄 사람도 없는 그런 용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첫 심문 때처럼 빙그레 웃으면서 그건 참 지당한 이유라고 말한 다음,

"하기야 그건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하고 덧붙였다. 그는 말을 뚝 그치고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면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당신입니다" 하고

빠른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으므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당신의 행동에는 나로선 이해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어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모두 지극히

간단한 일들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다시 이야기해보라고 판사는 재촉했다.

나는 그에게 이미 한 번 이야기한 것을 다시 요약해서 되풀이했다. 레몽, 바닷가, 해수욕,

싸움, 다시 바닷가, 조그만 샘, 태양 그리고 다섯 방의 총격. 한마디 할 적마다 그는

"네. 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쓰러진 시체에 이야기가 미치자 그는 "좋아요"

하면서 내 이야기를 확인했다. 나는 그처럼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이 지겨웠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해본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그는 일어서더니 나를 도와주고 싶다면서,

내게 흥미를 느낀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얻어 나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먼저 그는 나에게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로, 내가 엄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네.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사랑했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규칙적으로 타이프를 치고 있던

서기가 키를 잘못 짚은 것 같았다. 당황하면서 다시 뒤로 물려 고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말이다. 여전히 확연한 논리도 없이, 판사가 이번엔 내게 권총 다섯 발을 연달아서 쏘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보고 나서, 처음에 한 발 쏘고 몇 초 후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첫 발과 둘째 발 사이에 왜 기다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다시 한 번 붉은 바닷가 모래밭이 눈에 선해지면서 나는 타는 듯 뜨거운 햇살을 이마 위에 느꼈다.

이번에는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침묵이 계속되는 동안 판사는

흥분한 눈치였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머리털을 헝클면서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괸 다음,

야릇한 표정으로 나에게 약간 몸을 굽혔다. "왜, 왜 당신은 땅에 쓰러진 시체에다 대고

쏘았느냐고요?" 그 물음에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판사는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목소리까지 약간 변해서는, "왜 그랬습니까? 그 까닭을 말해줘야죠.

왜 그랬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일어서서 사무실 한끝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서류함의 서랍을

열었다. 거기서 은 십자가 하나를 꺼내가지고, 그는 그것을 휘두르며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여느 때와는 아주 다른, 거의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이것을, 이 사람을 압니까?"

"물론 압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자 그는 빠른 어조로, 자기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할 만큼

죄가 많은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용서를 받으려는 사람은 뉘우치는 마음으로

어린애처럼 되어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몸을 책상 너머로 기울이고

십자가를 거의 내 머리 위에서 휘두르고 있었다.(86)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고 구속되어 심문을 받는 장면이다. 아래 그림은 그 과정에서 판사가 은으로 만든 십자가를 들고 있는 모습.(87)

 

 

 

 

꼭 옮겨놓고 싶은 장면이었는데 어쩐지 읽을 때의 강렬했던 느낌보다는 밋밋하다.

어느 장면이나 그렇다. 줄거리를 따라 읽을 땐 긴장감이 가슴을 뛰게 해서 바람이 다 들어갔는데도 계속 바람을 넣고 있는 풍선을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따로 떼어놓으니까 이렇다.

감방에서 지내는 장면.

 

 

그러한 불편들을 제외하면, 나는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 거듭 말하자면, 문제는 다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배운 뒤부터는, 심심해서 괴로운 일은 없었다.

가끔 나는 나의 방을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방의 한구석에서 출발해서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인데, 그러면서 도중에 있는 것을 모두 마음속으로 따져보곤

했다. 처음에는 아주 빨리 끝나버렸다. 그러나 다시 되풀이할 적마다 조금씩 길어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있는 가구를 하나하나씩 기억해내고, 그 가구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떠올렸고, 또 그 물건마다 그 세부를 골고루 생각하고, 그러한 세부에

있어서도 상감(象嵌)이라든지 갈라진 틈이라든지 이 빠진 가장자리라든지 그런 것들에 관해서,

그 빛깔 또는 결 같은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재신 목록의 졸가리를

파악해서 온전한 일람표를 만들기에 힘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 주일 후에는,

내 방 안에 있는 것들을 열거해보는 것만으로도 여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처럼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등한히 했던 것, 잊어버렸던 것들을 기억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바깥세상에서 단 하루만을 살았을 뿐인 사람도 감옥에서 백 년쯤은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얼마든지 추억할 거리가 있어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건 하나의 장점이었다.

 

또 잠도 고통거리였다. 처음에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더군다나 낮에는 조금도

잘 수가 없었다. 차츰 밤에 자기가 수월해졌고, 낮에도 잘 수 있었다. 마지막 수개월 동안은

하루에 열여섯 내지 열여덟 시간씩 잤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남는

여섯 시간만 보내면 되었는데, 그것은 식사며 대소변이며 나의 추억들이며

체코슬로바키아1의 이야기로 가능한 것이었다.(99)

 

검사의 변론은 특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 일부.

 

피고석에 앉아서일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 있는 일이다.(123)

(……)

검사는, 배심원 여러분, 나는 그의 영혼을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사실상 나에게는 영혼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 인간다운 점도, 인간들의 마음을 지켜주는

도덕적 원리도 찾아볼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하고 그는 이어 말했다.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을 비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가 얻을 수 없는 것이 그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해서

나무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법정에 있어서는 관용이라는 소극적 덕목은, 그보다 더

어렵기는 하지만 더 고귀한 덕목, 즉 정의라는 덕목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이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심리적 공허가 사회 전체를 삼켜버릴 수도 있는 구렁텅이가 되는 경우에는

더욱이 그러합니다." 그가 엄마에 대한 나의 태도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

끝으로 그는, 자기의 의무는 괴로운 것이지만 단호히 그것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율법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그 사회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반응도 보일 줄 모르는 사람이므로 인정에 호소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목을 요구합니다. 사형을 요구해도 나의 마음은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짧지 않은 재임 기간 중 나는 여러 번 사형을 요구한 일이 있지만, 이 괴로운 의무가 오늘처럼,

신성한 지상 명령에 따른다는 의식과, 흉악무도하다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는

한 사람의 얼굴을 앞에 놓고 느끼는 혐오감에 의해 보상받아 균형을 회복하고 빛을 받는 것처럼

느껴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125)

 

정작 뫼르소의 변론은 (법정에 모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다.

그렇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도록 그가 모든 것을 다 전해주고 있다는 것은, 이 일기 같은 기록(1인칭 소설)을 통해서 너무나 명백하다.

 

검사가 자리에 앉자, 상당히 오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더위와 놀라움으로 어리둥절해졌다.

재판장이 잔 기침을 하고 나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덧붙여 할 말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으므로 일어서서 그저 생각나는 대로, 아랍인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그건 하나의 의사 표시라고 대답하고, 지금까지 자기는 나의 변호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변호사의 말을 듣기 전에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분명하게

말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빠른 어조로 좀 뒤죽박죽이 된 말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의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곧 뒤이어 그는 발언권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시간도 늦었고, 자기의 진술은 여러 시간을

요할 것이니까 오후로 미루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정은 이에 동의했다.(126)

 

 마침내 그는 기진맥진해서 사형 집행의 날을 기다린다.

 마지막이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138)

 

 

 

 

 

 

판형(板形)이 엄청나게 큰 책이고 글자 크기는 여느 책과 같지만 그림(版畵)이 많아서 잘 읽혔다.

심지어 서너 페이지에 걸쳐 그림만 이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