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인연 잊어가기

by 답설재 2015. 11. 19.

 

 

 

子曰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독립하고, 마흔에 불혹(不惑)하고, 쉰에 천명(天命)을 알고, 예순에 이순(耳順)하고, 일흔에 하고싶은 바를 좇되 법도(法度)를 넘지 않았느니라. (孔子) 爲政 四 子曰 『五十有五에 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호라』).

 

나의 경우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여기에 이르러, 무엇을 숨기거나 안 그런 척 그런 척하기는 싫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드디어 다 드러내고, 그렇게 하여 홀연히 가고 싶습니다.

지나가버린 일들은 일일이 설명하기가 싫긴 합니다. 일어난 일은 금방 기억의 저쪽으로 사라져가서 마침내 아득해지고, 그 일들과 함께 사람들도 사라져가기 때문입니다.

 

 

 

함께한 시간 후에는 꼭 나의 미흡했던 점을 반성하여 나의 사랑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 오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이승을 떠날 때, 우리가 이승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인연을 더없이 고마워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두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홀대를 받게 되면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는 가슴이 아려오게 됩니다.

 

 

 

얼굴은 초췌해지고, 기력은 떨어졌기 때문에 다가오기조차 싫을 테니까 새로 좋아할 사람이 없긴 합니다.

그 서글픔을 모른다면 나는 정상이 아닐 것입니다. 심지어 나조차 아이들이 좋고 젊은이들이 좋습니다. 동네의 아이들, 하다못해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 심지어 외국인 아이를 봐도 바라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고, 같은 값이면 늙은이를 가까이하고 싶진 않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자애롭고 명망 있는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오긴 했지만, 그나마 그 수가 '형편없이' '사정없이' 줄어들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주 고약한 마음일 때는 이렇게 하여 인간으로서 길이 허망해지고 폐기되는구나 싶은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신이니 심성 같은 것들이 다 망가져도 스스로 이 육신을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성은 제쳐놓고 꿈틀대는 육신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사람이나 벌레나 다 같지 않겠습니까?

일말의 자존심이라도 지키기 위해 내색을 하지 않고 지내야 할 것입니다.

 

'배신' '홀대' 같은 건, 관계가 먼 사람과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마땅히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아온 사이에서 한쪽이 그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게 되었을 때, 아니 그 관심과 사랑을 귀찮게 여길 때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이가 아니라면 "나에게 왜 그러느냐?"고 아주 유치한 질문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내가 지녀온 그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만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 다 두고 하필이면 노인을 섬기고 돌보고 사랑의 눈길을 보여주는 성스러운 인품이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개별적인 관심과 사랑을 가진 것은 아니고 '인류애'처럼 인간이 지녀야 하는 윤리적, 철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심지어 그런 의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와 같은 일을 겪을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인연의 수를 줄여나가고 파기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떠나는 것이 홀가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접한 한 인간으로서의 길인데도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자 했으나 언제나 그 사랑을 그르치는 일들을 이미 보아왔으므로 좀 냉정해지자고 다짐하며 지냈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럭저럭 온몸이 상처투성이입니다.

처음에는 더러 상처가 생기면 그걸 지우려고 했는데 그게 어려웠고, 그러다가 또 상처를 얻고, 아문 줄 알았던 상처가 덧나고 해서 이제는 아예 그 상처들을 지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드디어 얼굴조차 온통 주근깨, 검버섯 투성이입니다.

 

이상한 일은 포기하는 게 늘어날수록 마음은 더 편해지는 것입니다.

또 이상한 것은, 이처럼 초라하고 누추함에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남아서 깜빡거리고 있습니다. 혹이나 싶어서 100 혹은 1,000의 1이라도 다시 이 사랑을 받으러 오지나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기대로 날마다 저 창문을 내다봅니다.

그러면서 이 사랑을 받지 않겠다는데야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하며 지냅니다.

한 인간으로서, 주어진 생명을 다하는 것만도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방황과 탐색의 꿈들  (0) 2015.12.03
흡연자 헬무트 슈미트의 행복  (0) 2015.11.22
"아주머니"  (0) 2015.11.12
힘겨웠던 설득  (0) 2015.11.08
"열심히들 적는군"  (0)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