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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사랑64

"아빠! 얼른 또 만나~"(아빠들에게, 세상의 선생님께) ★ 아빠들에게 2011년 8월 23일 오후, 전철역에서였습니다. 열차를 갈아타려고 걸어오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별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아빠! 또 봐~" "아빠! 잘 가~" "아빠! 얼른 또 만나~" "아빠! …………" "…………" 멀어져 가는 거리를 그 외침으로 메워보려는 듯 그 아이는 연달아 외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 외침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환승역은 언제나 번잡합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의 외침이 너무나 애절해서, 아주 또렷하게 들려서 '아빠!' 그 외침이 들려오는 곳을 찾아 주변을 살폈습니다. 아이는 이미 인파에 묻혔을 것입니다. 순간! 키가 큰 삽십 후반 아니면 사십 초반의 그 아빠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꾸자꾸 뒤돌아보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얼.. 2021. 12. 17.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샘터 2005 장영희 교수는 유방암의 전이가 척추암이 되어 세상을 떠나기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어 주었습니다. 젊었던 날들, 장왕록이라는 번역자의 이름을 자주 보았는데 장 교수가 그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신문의 칼럼에서 그 이름이 보이면 열심히 읽었습니다.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은 왜 그랬는지 읽다가 말았고, 독자들이 '아,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하고 도서관이나 책방을 찾도록 해 달라는 신문사의 주문으로 쓴 칼럼을 엮었다는 이 책은 아예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2021. 12. 6.
앨리스 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소설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뿔 2007 줄거리로 보면 의아하다 싶을 수 있다. 켄 부드르와 조헤너 패리가 결혼하는 데는 둘 사이에 구체적인 미움이나 우정, 구애, 사랑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한심한 사내 부드르.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일로 늘 곤란을 겪는다. 아내 마르셀이 죽고 딸 새비서마저 장인 맥컬리 씨에게 맡겨 놓고는 이런저런 구실로 돈을 가져간다. 세월도 실없이 보낸다. 괜히 공군을 뛰쳐나왔고 주제넘게도 동료 문제로 비료 회사를 그만두었고 고용주에게 몸을 낮추지 않다가 보험회사에서도 쫓겨났다. 빌려준 돈 대신 허름하기 짝이 없는 호텔을 차지했는데 이 건물을 식당 겸 술집으로 개조하기 위해서 장인에게 또 돈을 좀 달라고 하지만 사실은 쓸모가 전혀 없어서 철거하는.. 2021. 11. 22.
사랑에 빠졌다는 것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거리의 악사 데이비드에게 그런 사람을 위한 일을 하는 레긴스 박사가 묻습니다. "항상 그렇게 돌아다닐 이유가 있나요?" 레긴스 박사가 물었다. 아니라고 데이비드는 대답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이유는 그의 여자 친구가 헤로인 중독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랑 너무 오래 같이 있었어요." "그녀를 사랑했나요?" 박사가 물었다. "사람들은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하더군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어쩌면 어리석은 것과 사랑에 빠진 건 같은 건지도 몰라요." 박사가 말했다. "동감이에요, 박사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솔로이스트』(스티브 로페즈, 랜덤하우스 2009)의 한 장면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건 어리석은 것과 같다? 사랑에 빠지는 건 어리석기 때문이다?.. 2021. 7. 1.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남순우 옮김 / 혜원출판사 2005 딸 다섯을 둔 가정, 그 딸들의 결혼을 이야기한다. 베넷 씨는 날카로운 재치와 풍자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신중하면서도 변덕스럽고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23년이나 함께 생활한 그의 아내조차도 남편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반면에 그의 부인은 속으로 감추지 못하고 쉽사리 노출시키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이해력이 부족하고 지식이나 교양이 풍부하지 못하여,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여자였다.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자기 신경이 예민해서 그렇다고 혼자 결론을 내리곤 했다.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 그녀의 인생 목적이었고, 다른 집을 방문하여 수다를 떠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8) 이 집의 .. 2020. 9. 16.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2》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2》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0 케말은 영화인 페리둔의 아내가 되어버린 유부녀 퓌순을 그리워하고 다가가고 싶은 욕망을 일일이 설명한다. 두려움, 초조함, 고통, 번민, 고뇌, 환희, 상심, 분노, 반성, 후회, 다짐, 상심, 슬픔, 희망, 기대…… 사랑에 빠져서 헤어날 길 없는 마음의 변화를 낱낱이 보여준다. 무려 8년간! 일주일에 네 번 저녁 식사 시간을 함께하고 통금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그 집을 나선다. 정확히 칠 년하고도 열 달간, 퓌순을 만나러 저녁 식사 시간에 추쿠르주마로 갔다. 처음 간 것은 네시베 고모가 “저녁때 와요!”라고 말한 지 십일일 후인 1976년 10월 23일 토요일이고, 퓌순과 나와 네시베 고모가 추쿠르주마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것이 1984년 .. 2020. 7. 8.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1》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1》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0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 행복을 지킬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평온으로 내 온몸을 감쌌던 그 멋진 황금의 순간은 어쩌면 몇 초 정도 지속되었지만, 그 행복이 몇 시간처럼, 몇 년처럼 느껴졌다. 1975년 5월 26일 월요일, 3시 15분경의 한 순간은, 범죄나 죄악, 형벌, 후회에서 해방되는 것처럼, 세상이 중력과 시간의 규칙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더위와 사랑의 행위로 땀에 흠뻑 젖은 퓌순의 어깨에 입을 맞추고,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천천히 그.. 2020. 7. 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Ⅱ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로리타》 신동란 옮김, 모음사 1987(13판) 롤리타.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다는 느낌? ‘불경’은 아니지? 외설스럽다? 외설? 아니지! 외설하고는 다르지! 그럼? 소녀(여성?)의 이름은 국어사전에도 들어 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나보코프(Nabokov, V.)가 195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파격적인 소아 성애를 묘사하여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으며, 한때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 발간되었을 때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오늘날 소아 성애를 가리키는 롤리타 콤플렉스가 일반 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나는 이 책을 '버젓이'(?) 들고 다니며 읽진 않았다. "(…) 아아 이름이 아주 예쁘구나 / 계속 부르고 싶어 / 말하지 못하는 / 나쁜 .. 2020. 6. 14.
테이아 오브레트 《호랑이의 아내 The Tiger's Wife》 테이아 오브레트 《호랑이의 아내 The Tiger's Wife》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11 1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개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근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 2019. 10. 21.
최인훈 《광장》 최인훈 《광장》 문학과지성사 1996 서 문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 (『새벽』, 1960년 10월) 1961년판 서문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2018. 11. 26.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전은경 옮김, 들녘 2014 1 라틴어, 헤브라이어, 그리스어에 능통한 교사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57)는 한때 제자였던 젊은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책 읽기와 고전문헌학이 전부인 그는 해박한 지식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런 그가 비 내리는 날 아침 출근길에 키르헨펠트 다리 위에서 한 포르투갈 여인을 만납니다. 신비감을 품은 그 여인은 자살을 시도한 직후였습니다. "모국어가 뭐지요?" 그는 조금 전에 이렇게 물었다. "포르투게스(Portugués)." '오'는 '우'처럼 들렸고, 올리면서 기묘하게 누른 '에'는 밝은 소리를 냈다. 끝의 무성음 '스'는 실제보다 더 길게 올려 멜로디처럼 들렸다. 하루 종일이라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 2018. 10. 17.
"개사랑합니다!" 1 '존나(졸라)' 이야기를 쓰고 난 다음 "우리말 123"이라는 사이트에 '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는 걸 봤습니다. 우리말에서 '개'는 앞가지(접두사)로 쓸 때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이라는 뜻으로 개금, 개꿀, 개떡, 개먹, 개살구, 개철쭉처럼 씁니다. 2.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이라는 뜻으로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죽음처럼 씁니다. 3.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이라는 뜻으로 개망나니, 개잡놈처럼 씁니다. '개좋다'는 아마도 '무척 좋다'는 뜻인 것 같은데, '개'가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이름씨(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 2018.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