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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앨리스 먼로 ... 기억

by 답설재 2022. 2. 23.

 

 

 

보트가 움직이자마자 옆자리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트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항해 내내 할 말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일어나 갑판으로 나가 사람이 거의 없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구명 용품이 든 통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앉은 그녀는 익숙한 장소들, 또 알지 못할 장소들에 대해 아련한 아픔을 느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그 모든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기억'함으로써 그 모든 일을 다시 한 번 경험한 후 봉인해 영원히 보관해 둘 생각이었다. 단 하나도 놓치거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날의 일을 순서대로 재구성해 마치 보물인 양 마음 한구석에 갈무리해 넣어두려는 것이었다.

메리얼은 두 가지 일을 예상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예상에 대해서는 안도감을 느꼈다. 두 번째 예상은, 지금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 틀림없었다.

피에르와의 결혼 생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게 첫 번째 예상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어셔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메리얼의 예상은 두 가지 모두 사실이 되었다.

 

 

앨리스 먼로 소설 〈기억〉(소설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뿔, 2007, 321~322)에서 본 장면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도 별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인간은 다 그 바탕이 있기 때문이고, 나는 별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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