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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귀신과 요정

by 답설재 2022. 2. 27.

2017.12.26.

 

 

 

요정이라는 말은 유럽 중세에 처음 등장했다. 요정 이야기는 특히 아일랜드·콘월·웨일스·스코틀랜드에서 성행했으며, 중세 이래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요정은 아름다우며, 사람보다 더 오래 살지만 영혼이 없기 때문에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 종종 바꿔친 아이를 대신 남겨놓고 어린애를 요정의 나라로 데려가기도 한다. 요정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결혼도 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제약이 따르고 이를 어기면 결혼생활이 끝나거나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요정들은 사람과 크기가 같거나 작으며, 아주 작으면 키가 10㎝ 정도밖에 안 되는 요정도 있다. 고추나물과 서양가시풀은 요정을 물리치는 힘이 있고, 산사나무?현삼화?금방망이는 요정들이 매우 아끼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함부로 다루면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다음백과'에서 찾아본 '요정'(요약)입니다.

어디에도 요정은 '상상의 ○○'이라는 언급은 없습니다.

○? 여기에 뭐라고 써야 합니까? 상상의 동물? 요정이 기분 나쁘다고 할 건 뻔한 일입니다. "아니, 우리가 동물이라고?"

그러면 우리는 얼른 "그게 아니야, 우리도 동물이거든?" 해줘야 그 요정의 얼굴이 밝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으려면? 상상의 여인이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내가 본 요정(그림)은 나비나 벌처럼 날개를 단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여성이 영혼이 없는(골이 빈) 여성이라니, 그런 여성과 함께 지내면 도대체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생각만 해도 좀 골치가 아프기도 하고 어쩌면 골치 아플 일 전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따위 이야기나 하고 있다니...

어느 책에서 요정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읽다가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뒷마당에 요정들이 살고 있는지 나는 증명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들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요정들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날개 달린 인간처럼 생긴 그 작은 생물들이 우리 집 정원을 윙윙 날아다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설령 내가 아무리 강하게 의심한다고 할지라도, 요정들이 거기 있지 않음을 내가 증명할 수는 없다. 창밖을 내다보거나 마당을 걸어 다니면서 그들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쩌면 그 이유는 그들이 나를 먼저 발견하고 숨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벌새처럼 날개를 달고 있기 때문에 매우 재빠르고 민첩하게 인간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너무나 능숙하게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쪽을 내가 종종 바라보면서도 수풀이나 꽃 사이에 섞여 있는 그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요정들이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내가 언제쯤 자기들이 있는 쪽을 바라볼 줄 알고 미리 대비하고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후략)

 

이 이야기는 가이 헤리슨이라는 이가 쓴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다산북스 2012)에서 봤습니다.

실제로 봤습니다! 132쪽에서 봤습니다!

요정은 서양에 많이 살고 여기 이곳에는 귀신이 많습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그 흔한 귀신을 단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요정도 못 보고 귀신도 못 보고 또 그런 류는 단 한 가지도 못 봤습니다.

요즘은 의술이 좋고 약이 좋아서 백 살도 살 수 있다지만, 그래서 앞으로 남은 세월에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팔십 년이 다 되어가도록 귀신 한 번 못 보다니, 그렇게 보고 싶어 해도 못 본 채 살아가고 있다니...

 

귀신은 어디에나 다 있답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 컴퓨터 주변에서 몇몇 귀신이 있어 투명인간처럼 내 눈앞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나의 모든 걸 알고 있긴 하지만 나에게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있으나 마나'라는 건데, 나는 그게 유감입니다.

그들이 나를 괴롭히거나 난처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까짓 거 당할 만큼 실컷 당하면 되고 실제로도 나는 많이도 당했겠지만) 많이, 실컷 시달리고 난 다음에는 내 간단한 요청을 딱 한 가지만 들어달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게 정말로 유감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류의 귀신들, 그러니까 서양 출신 '귀신'(단수) 혹은 '귀신들'(복수)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영 관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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