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가 움직이자마자 옆자리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트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항해 내내 할 말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일어나 갑판으로 나가 사람이 거의 없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구명 용품이 든 통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앉은 그녀는 익숙한 장소들, 또 알지 못할 장소들에 대해 아련한 아픔을 느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그 모든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기억'함으로써 그 모든 일을 다시 한 번 경험한 후 봉인해 영원히 보관해 둘 생각이었다. 단 하나도 놓치거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날의 일을 순서대로 재구성해 마치 보물인 양 마음 한구석에 갈무리해 넣어두려는 것이었다.
메리얼은 두 가지 일을 예상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예상에 대해서는 안도감을 느꼈다. 두 번째 예상은, 지금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 틀림없었다.
피에르와의 결혼 생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게 첫 번째 예상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어셔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메리얼의 예상은 두 가지 모두 사실이 되었다.
앨리스 먼로 소설 〈기억〉(소설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뿔, 2007, 321~322)에서 본 장면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도 별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인간은 다 그 바탕이 있기 때문이고, 나는 별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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