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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음악이라는 세상

by 답설재 2022. 2. 19.

중구난방으로 있던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숙연해지고 내면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하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 그 시간에 대해 '인간은 거기까지였다, 끝이 났다'고도 했습니다. 소설 《거짓의 날들》(나딘 고디머, 271~272)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는 레코더판을 올려놓은 뒤, 자신이 직접 녹음하기라도 한 것처럼 오보에 소리가 커졌다가 잠잠해지는 동안 긴장하고 서 있었다.

음악 소리가 방에 내려앉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 위로 용암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앉거나 서거나 기대고 있는 사람들 위에 내려앉으며 또 다른 폼페이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십여 분 정도 점점 더 깊숙이 자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과 말이 생명을 잃고 차가워졌다.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푸른 눈의 영국 여인조차도 농부의 자세로 바닥에 다리를 뻗고 윗입술을 약간 올린 채 오보에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녀의 남편은 방의 다른 쪽 구석에 앉아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팔로 무릎을 감싼 채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닥불을 들여다보는 그를 음악이 포착한 듯한 모습이었다. 뒷머리, 팔, 손, 늘어뜨린 손가락, 매니큐어를 칠한 발톱과 굽은 발가락, 칙칙한 갈색 생가죽 구두 등 모든 것이 별개였다. 인간은 거기까지였다. 인간은 거기서 끝이 났다. 인간은 거기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뭔가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 눈은 다른 사람이나 방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맞은편의 로리 험프리는 큰 몸집을 웅크리고 있어서 그런지, 목깃이 구겨지고 셔츠와 바지 사이의 구분도 사라지고 없었다. 거칠고 큰 얼굴, 감긴 눈, 언제나 변장처럼 달고 다니는 듯한 늘어진 귀, 각질이 일어난 두꺼운 입술이 거기에 있었다. 이사 옆으로 요엘의 목이 보였다. 그는 바닥에 앉아 책 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신기한 것에 정신이 팔린 동물처럼 목을 빼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혈관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면서 뛰었다.

에드나가 앉아 있는 모습은 악의가 없어 보였다. 위험한 서류를 꺼낸 평범한 가방의 순진함이라고나 할까. 허벅지를 포개고 앉은 그녀의 드레스 밑으로 부드러운 뱃살이 드러나 보였다. 이사는 자기 팔다리에 낙담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작아 보였다. 활기와 재치와 지성이 넘치는 작가가 아니라, 막대기 같은 작은 뼈들이 열정으로 비틀리고, 좌절당한 사랑에 입술을 삐죽거리고, 육체적 갈등 때문에 몸부림치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나와 함께 소파에 있는 젊은 남자만 냉소적인 스핑크스처럼 윙크를 한 번 했을 뿐이다.

음악이 끝났다. 그러자 사람들이 움직이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음악은 이제 내 마음속에만 있습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들으면 어제 들었던 음악처럼 친숙하기도 하지만 싫어진 장면도 있습니다.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삶이 꿈결 같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진 출처 : NAVER 포스트 : 맛있는 오디오 「아르보 패르트 센터에서 만난 에스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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