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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사랑」

by 답설재 2018. 1. 4.

사 랑

 

 

김 언

 

 

그건 내게 없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을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주어야 사랑이라고 한다. 그것이 무어든 그것은 내게 없는 것이어야 하고 네게 주어야 하는 것이고 네게 줄 수 없다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내게 없는 것이어야 한다. 내게 없는 것만 있다. 내게 없는 것만 네게 줄 수 있는 것. 그걸 꺼내어 네 품에 안겨주는 것. 내게 없다는데도 바다처럼 흔한 것. 바다처럼 넓은 것. 바다처럼 깊고 빠져나올 수 없는 그것을 다시 꺼내어 네게 안겨주는 것. 바다는 멀다. 바닷가 출신에게도 멀다. 줄 수 없기에 가질 수 없는 것. 가질 수 없기에 주어야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배운다면 참으로 난감한 바다가 멀리 있다. 만질 수 없는 바다가 멀리 있다. 보아도 보아도 바다뿐인 바다가 멀리 있다. 그 바다를 보러 가자고 사랑이 있다. 그 바다를 보러 가서도 사랑이 있다. 사랑은 짐이다. 사랑은 조개껍데기처럼 빛나고 나뒹군다. 아무렇게나 여기 있고 저기 있다. 저기 있고 여기 있다. 어디에 있어도 홀가분하지 않다. 가뿐하지도 않다. 그것은 무겁다. 몹시도 무거운 바다를 보고 왔다. 그리고 웃는 바보들이 있다. 사진 속에만 있다. 도대체 언제 적 사진인가?

* 어쩌면 데리다가 먼저 말했던 사랑. 아니면 누구라도 먼저 말했을 사랑. 도대체 언제 적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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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언 1973년 부산 출생. 1998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2017.8.10.

 

 

 

지난해 시월 『現代文學』에서 이 시를 발견(!)했습니다.

한 마디씩 생각해가며 읽었습니다.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읽고 싶었습니다.

한번은 "도대체 언제 적 사진인가?"에 이르러 "도대체 언제적 사랑인가?" 하고 패러디하고 싶었는데 시인이 이미 바로 그 註를 붙여 놓은 걸 발견(!)했습니다.

사랑……. 그게 '입맞춤' 같은 것이기만 하다면 누가!……

 

이 시인이 시인이 되지 않고 과학자나 수학자가 되었다면?

그렇게 생각해보았다.

그럼 사랑을 E=mc² 혹은 원주율 같은 걸로, 아니면 무슨 방정식이나 예상외로 + 만 이용한 아주 간단한 하나의 수식으로 정리해내지 않았을까?

그럼 이 시인이 시인이 된 것이 다행한 일일까, 과학자나 수학자가 되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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