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가다
김중일
그해 그는 바람이 되었습니다.
그해 나는 바람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전국 곳곳에 떨어뜨린 머리카락들이, 밤마다 한데 모여 바람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되어 다시 길어지는 내 머리카락 끝에 부딪혔습니다.
첩첩산중 키 작은 나무 한 그루, 이파리 한 잎의 그늘이 되었습니다.
밤새 불어나 더 세차게 흘러가는 물결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는 건 내가 불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세상의 첫날부터 바람은, 지금껏 우두커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공중이 입은 옷깃으로, 항시 멈춰 있었습니다.
그 바람이 몸에 부딪힌다는 건, 바람이 아니라 내가 불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머리카락에, 얼굴에, 목덜미에, 손등에 스치는 건 내가 아주 빠르게 불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그날의 바람처럼 붙박여 있는데, 내 몸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불어가고 있습니다.
바위 같은 바람에 쓸리고 부딪치며 온몸이 불어갑니다. 머리카락이 길어지며 불어갑니다. 손톱이 길어지며 불어갑니다. 내가 불어가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바람에 어깨를 부딪치며 나무들이 불어갑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새들을 퉤퉤 뱉어가며 불어갑니다.
그해에는 함께 가던 그가 바람처럼 완전히 멈춰졌습니다.
그해부터 함께 가던 그가 바람처럼 매 순간 내게 부딪혀옵니다.
그 때문에 내 몸이 이 순간도 불어간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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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 등단. 시집 『국경꽃집』『아무튼 씨 미안해요』『내가 살아갈 사람』.
『현대문학』 2017년 8월호.
모든 일들이 바람이었구나, 생각하니까 지금까지의 일들이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생각하고, 읽고, 쓰고, 이야기하고, 경험하고 한 것들의 바탕을 이루는 철학 같은 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들이 마침내 바람으로 드러났구나…….
공허하다니, 즐거워하며 가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또 궁금한 것들은 이곳을 떠나게 되면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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