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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잿빛」

by 답설재 2017. 10. 16.

잿 빛

 

이기성

잿빛, 생각하면 재의 마을이 떠올라요. 그 마을엔 잿빛 여자들이 살았어요. 여자들은 커다란 드럼통에 시멘트를 반죽해서 벽돌을 만들었어요. 깨진 창문에 탁자에 낡은 접시에 잿빛이 내려앉고 하얀 팔꿈치에도 눈꺼풀에도 수북이 쌓였어요. 밤이나 낮이나 아기들은 재를 뱉어내며 울었어요. 잿빛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건 참 멀군요. 잿빛은 구름보다는 바닥에 가깝기 때문일까요? 그러니 누가 알겠어요? 사라진 재의 아이를. 친구들아, 나는 자라서 재의 아이가 되었단다. 벽돌 속에서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나는 거대한 반죽통 속에서 천천히 잿빛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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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1966년 서울 출생. 1998년 『문학과사회』 등단. 시집 『불쑥 내민 손』 『타일의 모든 것』 『채식주의자의 식탁』. 〈현대문학상〉 수상.



이런 마을이 다 있나?

여러 번 읽었습니다.

동화나 소설을 읽는 것 같고, 마침내 '내 이야기가 아닌가?' '이 시인이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싶어서 또 읽었습니다.

'재의 마을'이 아름다운 마을은 아니어서 자꾸 생각하게 되고, 드디어 익숙한 마을이 되었습니다.

 

재의 마을

잿빛 여자들

잿빛

그 마을의 아이들

재의 아이

죽음?…….

 

* 이 포스팅을 정리하다가 시의 출처('현대문학' 몇 년 몇 월호)를 잃어버렸습니다.

 

 

 

2017 여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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