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일 뿐이다
고영민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는데
건진 돼지고기 한 점에
젖꼭지가 그대로 붙어 있다
젖꼭지는 마치 처음 만난 나에게
꾸벅 인사하는
아이의 머리통처럼 보인다
돼지의 젖꼭지는 몇 개일까
이것은 새끼를 먹이던
그중의 하나
밥뚜껑에 건져내놓고
다시 천천히 밥을 먹는다
그냥 돼지고기일 뿐이다
돼지고기일 뿐이다
― 시집 <구구>(문학동네)에서
《한겨레》 2016.1.8. 23면에서 옮김.
짐승들도 생각을 한다는 걸 읽었습니다.1
그럼 영혼도 있다는 얘기일까요?
어쩌면 다 쓸데없는 생각일 것입니다.
이 시를 찾아 다시 읽었습니다.
김치찌개를 먹고 있는 시인을 생각합니다.
무심코 나를 잠깐 바라보았던 나의 그 돼지들이
무심한 나 대신
굳이 저 고영민 시인을 찾아가 다른 돼지들과 섞여 함께 꿀꿀거리면
세상에!
그런 꼴이 어디 있겠습니까.
2017.8.8.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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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덧붙임 : 2012년 7월 신경생물학과 인지과학 전문가들이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모여 동물의 의식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모든 포유류와 조류, 문어를 포함한 그밖의 많은 동물이 의식을 생성하는 신경기질을 지니고 있다. 인간만이 의식을 생성하는 신경기질을 지닌 유일한 생물이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의 주요 내용이다./ 동물이 의식이 있다는 것은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다. 마음은 고통, 쾌락, 분노, 사랑 같은 주관적 경험의 흐름이다. (후략) - 백기철, '동물 의식에 관한 선언'(한겨레, 2017.8.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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