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주
유 진 목
녹색 커튼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어
창밖은 볼 수가 없고
여기는 오래된 집이야
그늘에서 입을 맞추면
돌연 살갗이 일어서는
욕실 바닥의 물때를 지울 때
당신은 천천히 늙어야 해
생각하면 언제나 아름다웠어
젖은 거울을 손으로 쓸면
거기서 나는 여름이었고
여주는 열린다
그의 얼굴은 잘 알고 있지만
내 얼굴은 거의 모르고 있다
이렇게 씨를 없애면
부드러운 맛이 난다고 해
찬장에 든 것은 그대로 먹으면 되고
맨 아래 술병에도 남은 술이 있어
젖은 발로 당신은 부엌에 들어왔던 것 같아
이걸 다 어떻게 아는지
모르지
죽어도 좋을 때까지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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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1981년 서울 출생. 2016년 시집 『연애의 책』 등단. 시집 『연애의 책』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
『현대문학』 2017년 6월호 150~151쪽.
여주 이야기이거나 연인 이야기겠지 하다가
"찬장에 든 것은 그대로 먹으면 되고
맨 아래 술병에도 남은 술이 있어"
거기에 이르러 슬펐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을 때"가 있기나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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