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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여주」

by 답설재 2017. 7. 24.

여 주

 

 

유 진 목

 

 

녹색 커튼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어

창밖은 볼 수가 없고

 

여기는 오래된 집이야

 

그늘에서 입을 맞추면

돌연 살갗이 일어서는

 

욕실 바닥의 물때를 지울 때

 

당신은 천천히 늙어야 해

 

생각하면 언제나 아름다웠어

 

젖은 거울을 손으로 쓸면

거기서 나는 여름이었고

 

여주는 열린다

 

그의 얼굴은 잘 알고 있지만

내 얼굴은 거의 모르고 있다

 

이렇게 씨를 없애면

부드러운 맛이 난다고 해

 

찬장에 든 것은 그대로 먹으면 되고

맨 아래 술병에도 남은 술이 있어

 

젖은 발로 당신은 부엌에 들어왔던 것 같아

 

이걸 다 어떻게 아는지

 

모르지

 

죽어도 좋을 때까지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해

 

 

 

   ――――――――――――――――――――――――――――――

  유진목 1981년 서울 출생. 2016년 시집 『연애의 책』 등단. 시집 『연애의 책』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

 

 

『현대문학』 2017년 6월호 150~151쪽.

 

 

 

 

2013.11.10.

 

 

 

여주 이야기이거나 연인 이야기겠지 하다가

 

"찬장에 든 것은 그대로 먹으면 되고

맨 아래 술병에도 남은 술이 있어"

 

거기에 이르러 슬펐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을 때"가 있기나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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